[러 인질극]“주민 1%가 희생됐다”…‘통곡의 도시’ 베슬란

  • 입력 2004년 9월 5일 18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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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체무(도대체 왜)….”

인구 3만4000명의 평화로운 소도시였던 러시아 남부 베슬란은 하루아침에 ‘통곡의 도시’로 변했다.

인질사태는 끝이 났지만 전 인구의 1%가 훨씬 넘는 시민이 숨지거나 사라졌다.

가족과 친지 중 희생자가 없는 집이 없을 정도다. 무엇보다 희생자 중 절반 이상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자녀들이었다.

5일 희생자들의 첫 장례식이 열렸다. 시당국은 당초 합동장례식을 치르려고 했으나 포기했다. 희생자가 갈수록 늘어나는 데다 아직 생사를 알 수 없는 실종자가 260여명에 이르기 때문이다.

아직 자식의 생사를 모르는 실종자 부모들은 애타는 심정으로 베슬란 중심가 광장과 사고 대책본부가 차려진 문화궁전 주변을 정신없이 헤매고 있다. 4남매 모두의 생사가 불확실한 타티예프 부부는 아이들의 사진을 들고 나와 지나가는 사람마다 붙잡고 행방을 묻는 안타까운 모습이 방송을 통해 전해졌다.

관영 러시아 방송은 이번 사태로 자식이 모두 희생되거나 실종된 가족도 상당수라고 보도했다.

살아 남은 사람들도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아들 알란의 개학식을 맞아 가족 6명이 모두 학교에 갔다가 인질로 잡혔던 시다코프 가족은 다행히 전원 구출됐다. 그러나 아이들은 온종일 한마디도 하지 않고 부모의 손을 놓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생존자들에 대한 심리치료가 시급하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제한된 의료시설과 인력으로는 부상자들을 치료하기도 버거운 실정이다. 인근 블라디카프카스 등 대도시로 일부 환자를 실어 날랐으며 상태가 위독한 어린이 20여명은 모스크바로 긴급 이송됐다.

비극의 현장인 베슬란 제1공립학교. 폭발이 일어났던 체육관은 지붕과 벽이 무너져 내린 채 앙상한 철골만이 남아 있는 모습이다. 곳곳에 남은 핏자국과 총탄의 흔적이 처참했던 당시 상황을 말해줄 뿐이다.

시 당국은 학교 건물 복구를 포기하고 다른 곳에 아예 교사를 새로 짓겠다고 밝혔다. 일부에서는 이 건물을 그대로 보존해 테러의 참상을 알리는 기념관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베슬란은 옥수수에서 알코올을 추출하는 공장이 있을 뿐 별다른 특색이 없어 다른 지역의 러시아인들에게도 생소한 도시. 그러나 이번 사태로 러시아인들에게 영원히 지울 수 없는 아픈 기억을 남기게 됐다.

러시아 정부는 6, 7일을 국상일로 정했다.

5일은 수도 모스크바가 건설된 지 857년을 맞는 ‘모스크바의 날’이었지만 대부분의 축하행사가 취소됐다.

테러의 공포는 전 러시아를 휩쓸고 있다. 3일 전국의 학교가 휴교했다. 당국은 각급 학교의 경비를 강화했다.

그러나 추가 테러에 대한 우려는 가시지 않고 있다. 시민들은 사람이 많이 모이는 장소를 아예 가지 않을뿐더러 외출마저도 피하는 모습이다.

일간 이즈베스티야는 이번 사태로 러시아를 방문할 예정이던 외국인 중 3분의 1이 계획을 취소했다고 전했다.

모스크바=김기현특파원kimki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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