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올림픽을 연다는 나라가…

  • 입력 2004년 8월 8일 18시 4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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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밤 베이징(北京)에서 열린 중국과 일본의 아시안컵 축구 결승전이 끝난 뒤 중국의 축구팬들 사이에선 ‘난리법석’이 벌어지고 있는 듯하다. 축구경기 차원을 떠나 일제의 중국 강점기 때나 있었음직한 반일감정이 재연되고 있다는 착각마저 든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하지만 결승전이 벌어지고 있던 그 시각, 중국 당국이 놓쳐서는 안 되는 장면들이 한국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일본팀을 응원하는 한국민들의 환호성이다.

중국도 익히 알고 있을 것이다. 서울 한복판에서 한국 국민들이 일본팀을 응원하는 것은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란 것을….

그러나 이날 밤 아파트 단지와 식당 곳곳에선 일본팀이 골을 넣을 때마다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스스로 일본을 응원하는 자신을 발견하고 놀랐다는 한국 국민들이 적지 않았다.

국제정치가 빚어내는 변화의 기류를 짚어내는 것은 학자들의 몫이다. 하지만 그런 변화 의 기류 자체를 만들어내는 것은 자연발생적인 여론이나 민심일 때가 많다.

서울올림픽에서 한국 국민들은 미국과 옛 소련의 배구 결승경기를 보며 소련에 박수를 보냈다. 당시로선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2년 뒤 한국은 소련과 수교했고 반미감정은 확산돼 갔다.

바로 얼마 전 워싱턴에선 “이제 한국인들은 미국보다 중국을 더 가깝게 여기는 것 같다”는 우려가 나왔다. 그런 한국인들이 왜 스스로에게 놀라면서까지 일본을 응원하고 있었을까. 중국이 고구려사를 자국 역사에 편입시키려는 데서 촉발된 최근의 양국간 마찰을 빼놓고는 한국인의 일본 응원을 설명할 방법이 없다. 중국 스스로 반중(反中) 기류를 자초한 셈이다.

과거 중국 지도자 덩샤오핑(鄧小平)은 “일본의 중국침략을 정당화한 일본 교과서 왜곡은 반드시 시정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금 중국 당국이 보이고 있는 태도는 ‘내가 한 역사 찬탈은 로맨스요, 남이 한 역사 왜곡은 스캔들’이라는 이중적 태도라고밖에 볼 수 없다.

중국 고전에 자주 등장하는 교훈 중 하나가 ‘큰 나라는 명분을 잃으면 흔들린다’는 것이다. 대국이라면 그만한 국가적 역량을 갖춰야 할 것이다. 이래가지고야 올림픽을 치를 수 있겠는가.

김승련 국제부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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