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일씨 피살/4大 의문점]민간인 말만 듣고 우왕좌왕

  • 입력 2004년 6월 23일 18시 4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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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무장단체에 살해된 가나무역 김선일씨의 납치 시점이 당초 알려진 17일보다 훨씬 이른 5월 31일이라는 사실이 23일 알려지면서 여러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대사관의 정보력 부재=김씨가 5월 31일 납치된 게 사실이라면, 이라크 주재 한국대사관은 알 자지라 방송에 살해 위협 방송이 나간 20일 오후(현지시간)까지 3주 동안 납치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던 셈이다.

외교통상부 당국자는 김씨 피살 소식이 국내에 알려지기 불과 몇 시간 전인 22일 밤까지도 “17일 납치된 것으로 알고 있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이에 대해 교민 안전대책에 비상이 걸린 상황에서 20여일이나 교민의 ‘실종 상태’를 파악하지 못했다는 것은 현지 공관의 정보력 부재를 그대로 드러냈을 뿐 아니라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정부가 김씨 납치 사실을 알고도 고의로 은폐한 것이 아니냐는 의문이 정치권 등에서 제기되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일부 인터넷 신문과 네티즌들은 이라크 추가 파병을 강행하기 위해 상황을 고의로 은폐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물론 정부는 이를 강력히 부인하고 있다.

▽납치 목적 의문=김씨를 납치한 이라크 무장단체는 납치 사실을 언론을 통해 공개하기 전 김씨를 3주간이나 억류하면서도 납치 목적을 대외적으로 알리지 않았다. 한국군의 이라크 파병 철회가 목적이었다면 국가안전보장회의(NSC)가 추가 파병을 확정하기 전에 요구조건을 내걸어 ‘협박’하는 것이 실제 목적 달성을 위해서는 훨씬 효과적이었다.

이들은 NSC가 추가 파병을 확정하자마자 기다리기라도 한 듯이 ‘24시간 내 파병철회’라는, ‘무리한’ 요구조건을 내걸고 김씨 살해 위협을 했다.

이 때문에 한국의 이라크 추가 파병 결정에 극단적인 방법으로 항의하려는 ‘기획 살해’가 아니었나 하는 분석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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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문(潘基文) 외교부장관이 “김씨를 납치한 단체는 처음부터 살해할 목적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고 말한 것도 이런 정황에 기초한 것으로 보인다.

▽미군은 납치 사실 몰랐나=현지 주둔 미군이 사전에 김씨 납치 사실을 알고도 한국정부에 알리지 않았다는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추론의 근거는 미군측이 한국군의 추가 파병에 걸림돌이 불거지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미군의 사전 인지설은 여러 곳에서 감지된다. 가나무역 김천호 사장은 6월 초 미국측 사업 파트너로부터 김씨 실종 사실을 전해들었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적어도 이 시기에 미군은 이를 인지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미 해병대측이 김씨 문제와 관련, 20일경 김 사장에게 “급히 만나자”고 연락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한국정부가 이때까지도 미군측으로부터 아무런 정보를 전달받지 못했다는 점도 의문을 사는 대목이다.

그러나 반 장관은 “미국 정부에 확인한 결과 미 정부도 CNN 보도사실을 접하고 피랍 사실을 알게 됐다고 한다”며 미군의 사전 인지설을 강력 부인했다.

김 사장도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미군측으로부터 통보를 받거나 김씨 석방을 위해 미군측과 직접 면담한 사실은 없다”며 “다만 원청업자인 미국의 모회사측에 이를 통보한 만큼 자연스럽게 모회사가 이를 미군측에 통보했을 것으로 믿었다”고 앞서 증언을 뒤집었다.

▽김천호 사장은 왜 혼자 뛰었나=현지 사업 경험이 있다고는 하지만, 알 카에다와 연계된 강경 무장세력과 사적으로 접촉해 인질을 구출하려고 한 김 사장의 행적은 이해하기 어렵다.

특히 김 사장은 미국측 사업 파트너와 미 해병대, 이라크인 변호사 등과 머리를 맞대고 김씨 석방을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면서도, 정작 한국대사관에는 알 자지라가 방송한 21일에야 김씨 납치 사실을 알렸다.

김 사장이 납치 시점에 대해 자꾸 말을 바꾼 경위도 의혹이다. 최영진(崔英鎭) 외교부 차관은 김 사장이 김씨 납치 시점을 ‘17일→15일경→5월 31일’로 바꿔 진술했다고 전했다.

김 사장이 정확히 언제 어떤 경로를 통해 납치 사실을 알게 됐고, 누구와 석방 교섭을 해왔는지, 정부에 왜 거짓 진술을 반복했는지 등은 아직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윤종구기자 jkma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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