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일씨 피살]“난 살고 싶다” 절규 결국 물거품

  • 입력 2004년 6월 23일 18시 4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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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에서 영국 런던을 거쳐 한국으로 오는 가장 싼 항공편을 수소문했던 김선일씨(34). 그는 지난해 6월 15일 이라크 주둔 미군에 음식 재료를 공급하는 군납업체 가나무역의 아랍어 통역 직원으로 이라크 생활을 시작했다.

김씨는 4월 30일 가족에게 전화를 걸어 “계약이 끝나는 6월 말이나 7월 초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마지막 전화였다. 5월 20일엔 런던에 사는 친구에게 e메일을 보내 “6월 말 요르단에 들른 뒤 런던을 거쳐 한국으로 갈 것”이라고 밝혔다.

▽행방이 묘연한 20여일=김씨의 행적이 묘연해진 것은 지난달 31일. 가나무역 직원들은 전날까지 김씨를 목격했다. 따라서 김씨가 ‘알 타우히드 왈 지하드(유일신과 성전)’란 이라크 무장단체에 납치된 시점은 가장 멀리 보면 지난달 31일.

김씨의 납치 시점은 가나무역 김천호 사장의 오락가락하는 발언 때문에 헷갈렸다. 김 사장은 당초 “김씨는 6월 17일 미 군수업체 핼리버튼사 자회사인 켈로그 브라운 앤드 루트(KBR) 직원과 함께 바그다드에서 서쪽으로 200km 떨어진 리브지 캠프에 들러 일을 마친 뒤 바그다드로 돌아가다 납치됐다”고 말했다가 23일 “6월 10일경 김씨의 억류사실을 알았다”고 번복했다.

김 사장은 김씨의 피랍 사실을 이라크 한국대사관 등에 알리지 않고 직접 모술 등지로 가서 이라크 무장단체와 김씨의 석방 협상을 비공개로 시도하기도 했다. 김씨의 피랍사실은 21일 오전 알 자지라TV가 납치단체의 협박 비디오를 보도하면서 공개됐다. 그동안 김씨는 언제 닥칠지 모르는 죽음에 대한 불안감으로 가슴을 졸여야 했다.

▽“난 살고 싶다”=21일 오전 4시(이하 한국시간) 알 자지라 TV에서 방영된 화면에서 김씨는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여 “나는 죽고 싶지 않다. 내 목숨은 중요하다”고 울부짖었다. 납치범들은 한국군의 철수와 한국군의 추가파병 철회를 주장하며 이라크에서 해가 지기 전까지 24시간의 협상시한(22일 오전 4시)을 줬다.

하지만 김씨의 납치소식과 무장단체의 석방 요구조건을 접한 정부는 21일 오전 10시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열고 “파병 원칙에는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김씨에게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한 것이다. 납치단체가 실현 가능성이 없는 조건을 내세운 것은 사실상 김씨에 대한 ‘처형’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희망 뒤에 절망=그럼에도 실낱 같은 희망은 보였다. 살해 시한인 22일 오전 4시까지 정부와 민간이 여러 채널을 동원해 김씨 석방 노력을 기울였고, 22일 오후 6시경 알 아라비야 TV가 “무장단체가 협상 시한을 연장하기로 했다”고 보도했기 때문.

이라크 정계 등에 인맥을 보유한 국내 경호업체 NKTS 등 민간차원의 노력도 함께 이뤄졌다.

그러나 무장단체는 22일 오전 한국정부가 파병 의지를 굽히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한 뒤 곧바로 김씨를 처형한 것으로 보인다. 김씨의 마지막 모습은 23일 오전 1시40분 알 자지라 TV에 의해 공개됐다. 그리고 김씨의 시신은 22일 오후 10시20분경 몸과 목이 분리된 채 미군에 의해 발견됐다. 더구나 납치단체는 시신을 건드리면 폭발하는 부비트랩까지 설치, 마지막 가는 길에까지 잔혹행위를 서슴지 않았다.

이호갑기자 gd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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