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톈안먼사태’ 주역들의 인생유전

  • 입력 2004년 6월 2일 19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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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은 중국 베이징(北京) 톈안먼(天安門) 광장에서 민주화 요구 시위대가 탱크를 앞세운 군대에 유혈 진압된 지 15주년이 되는 날.

당시 시위 주역 가운데 상당수는 미국에 망명, 학업을 계속했으며 일부는 현재 벤처기업가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아사히신문은 2일 톈안먼 시위 주역들의 근황을 전했다.

중국 공안당국의 수배 리스트 1호에 올랐던 왕단(王丹·38)은 현재 미국 하버드대 박사과정에 다니고 있다. 전공은 대만사. 홍콩과 대만의 잡지에 중국 공산당 체제를 비판하는 글을 연재하고 있다.

왕단은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대책을 보면 중국 공산당 체제가 얼마나 문제가 많은지 알 수 있다”면서 “다행히 젊은 세대는 공산당 색에 그리 물들지 않았다”고 기대감을 표시했다. 그는 “10년 내에 귀국하고 싶다”고 말했다.

왕단은 그 후 반혁명선전선동죄로 체포돼 3년 복역한 뒤 풀려났다. 홍콩으로 옮겨 중국 공산당을 비판하다 1996년 다시 체포돼 징역 11년을 선고받았으나 98년 질병 치료를 이유로 가석방돼 미국으로 건너갔다. 톈안먼 추모행사를 위해 미국 영국 캐나다 등의 6개 도시를 돌 계획이다.

지명수배 2호였던 우얼카이시(吾爾開希·36)는 프랑스와 미국에서 유학한 뒤 대만으로 옮겨 탤런트 겸 사업가로 활동 중이다.

당시 시위대 ‘총사령관’으로 핸드마이크를 들고 대열의 선두에 서 ‘중국의 잔 다르크’로 불렸던 차이링(柴玲·38)은 미 하버드대 경영학석사(MBA) 출신으로 인터넷 관련 회사를 차렸다.

‘부총사령관’으로 불렸던 리루(李祿)는 뉴욕 48층 빌딩에서 ‘히말라야 캐피털’이란 투자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세계경제포럼이 ‘차세대 세계지도자 100명’ 가운데 한 명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사건 직후 미국으로 건너가 컬럼비아대에서 경제학 학사, MBA,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 대학 150년 역사상 6년간 이런 학업을 이룬 학생은 그가 유일하다. 뉴욕에 본부를 둔 인권단체 ‘중국인권’에 따르면 톈안먼사건 이후 주모자급 100여명과 시위 참가 학생 가운데 2만명가량이 도미했다. 유학 중 사건이 터지자 귀국을 포기, 미국에 머물러 영주권을 취득한 중국 유학생은 5만명에 이른다.

도쿄=조헌주특파원 hans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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