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서][인문사회]어느방송인의 프랑스어 사랑

  • 입력 2004년 4월 16일 19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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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어 낱말 구하기(Cent Mots `a Sauver)/베르나르 피보 지음/알뱅 미셸 출판사

프랑스 공영 TV의 독서 프로그램 ‘아포스트로프(Apostrophe·1975∼1990)’와 ‘부이용 드 퀼튀르(Bouillon de Culture·1991∼2000)’의 진행자로 지난 사반세기 동안 명성을 떨쳤던 방송인 베르나르 피보(Bernard Pivot·69)는 ‘프랑스 문화의 상징’으로 한국에도 꽤 알려져 있는 인물이다. 그가 독서 토론 프로그램의 명진행자로 인기를 끌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보다 ‘성실하고 꼼꼼한 책읽기’에 있었다. 당연한 귀결이겠지만 이런 ‘책읽기’의 열정에 걸맞게 피보의 ‘프랑스어 사랑’ 역시 각별한 것으로 유명하다.

피보는 1985년부터 해마다 ‘디코 도르(Dico d'or·황금 사전)’란 전국 규모의 받아쓰기 대회를 열며 프랑스인들의 ‘받아쓰기 독선생’으로도 맹활약 중이다. 이처럼 모국어에 대한 관심을 고양시키는 일에 누구보다 앞장서 왔던 그가 이번에 ‘멸종 위기’에 처한 프랑스어 낱말들을 되살리기 위해 직접 펜을 들고 나섰다. 책 이름은 ‘프랑스어 낱말 구하기’.

이 책에서 피보는 프랑스인들이 가장 많이 참고하는 두 권의 사전인 ‘로베르(Robert)’와 ‘라루스(Larousse)’에서 더 이상 볼 수 없게 된 낱말 100개를 찾아내 이들을 다시 살려낼 것을 제안하고 있다. 저자는 이들 낱말의 뜻과 어감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재치 있는 뜻풀이를 달고 유명 작가들의 예문을 곁들여 낱말의 쓰임새를 자상하게 설명해 주고 있다.

언어란 멈추지 않고 진화하는 속성이 있어 세월이 흐르면 당연히 사망선고를 받고 사라지는 낱말이 생겨나고, 또 한편에서는 쉴 새 없이 새로운 낱말이 태어나 출생신고를 하기 마련이다. 이런 언어의 속성을 모를 리 없는 저자가 ‘언어의 숙명’을 거부하고, 버림받은 낱말을 위해 구명운동을 펴는 까닭은 무엇일까? “책읽기를 통해 만났던 주옥같은 프랑스어 낱말들을 단지 사전에 실릴 공간이 부족하다는 이유만으로 그냥 사라지도록 내버려둔다면 이는 마치 멸종위기에 놓인 동식물을 해치는 범죄행위나 다름없다”는 저자의 소신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물론 한 낱말의 생존 문제는 사전의 등재 여부만으로 판가름 나지 않는다. 또한 혹자의 말대로 사전이란 한 시대와 사회의 거울일 뿐이지 인위적으로 좋은 용법(bon usage)과 규범(norme)을 강요하는 책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좋은 포도주를 즐기듯 정감 있는 낱말들에 취해 마냥 살고 싶어 하는 저자의 바람을 나무라지 못하는 까닭은, 프랑스인 누구나 피보가 ‘모국어 지킴이’로 외길을 걸어온 인물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임준서 프랑스 루앙대 객원교수 joonseo@worldonline.f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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