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법원 “총리 신사참배는 公的활동”

  • 입력 2004년 4월 7일 19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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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는 취임 이래 모두 4차례 야스쿠니(靖國)신사를 참배했다. 제2차 세계대전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신사는 ‘일본 군국주의 상징’인 까닭에 그때마다 한국 중국 등 과거 침략 피해를 본 국가는 크게 반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이즈미 총리가 신사 참배를 강행해 온 것은 무엇보다 국수주의 세력을 중심으로 한 지지 여론이 반대 목소리보다 컸기 때문이었다.

일본 정부는 항상 “각의 결정 등이 없었기 때문에 총리 직무로 행한 것이 아니다”라는 단서를 달며 총리 개인 자격의 참배였을 뿐이라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후쿠오카(福岡) 지방법원의 6일 판결은 일본 정부의 이 같은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공인 자격의 참배이며, 헌법상 정교 분리 원칙에 어긋난다는 점을 명확히 한 것이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총리는 헌법상의 문제점과 다른 나라들의 비판을 충분히 알면서도 정치적 목적을 위해 참배했다”며 “총리의 참배는 공적인 것”이라고 못 박았다.

이 판결은 국내외의 반발을 무시하고 신사 참배를 강행해 온 고이즈미 총리에게 정치적 타격을 주면서 최근 일본 사회에서 일고 있는 극우 조류에 제동을 걸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고이즈미 총리는 2001년 8월 13일 참배 때 방명록에 ‘내각총리대신 고이즈미 준이치로’라고 기재한 바 있다. 이후엔 논란을 피해 이름만 적었지만, 참배 때마다 공용차를 이용했으며 비서관도 수행해 일반인들은 당연히 ‘공적 참배’로 받아들였다.

한 재일동포 변호사는 “일본에는 헌법재판소가 없기 때문에 지방법원도 위헌 판단을 내릴 수 있다”면서 “1심이라고 하지만 법원이 일단 위헌 판단을 확실히 내렸다는 데 상당한 의미가 있다”고 이번 판결의 의미를 강조했다.

하지만 이번 판결이 일본 전국에서 진행 중인 유사한 소송에 영향을 줄 가능성은 있으나 위헌성에 대해서는 재판부가 더 이상 언급하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더 많다.

현재 후쿠오카 외에도 도쿄, 지바(千葉), 오사카(大阪), 마쓰야마(松山), 나하(那覇) 등 6개 지방법원에서 유사한 소송이 진행되고 있다. 오사카와 마쓰야마 지방법원은 최근 위헌 여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은 채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기각한 바 있다.

일본의 반응은 엇갈렸다.

이날 일본의 석간은 일제히 1면 머리기사로 판결 내용을 전하며 고이즈미 정부에 상당한 타격을 준 것으로 분석했다. 그러나 일본 사회의 보수 우경화 분위기로 미뤄 이번 판결의 충격은 일시적일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고이즈미 총리가 위헌 판결 직후에도 신사 참배 계속 방침을 밝힌 것은 이와 무관하지 않다.

호소다 히로유키(細田博之) 관방 부장관은 “참으로 유감스러운 판결”이라고 말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자민당 간사장은 “총리의 참배는 헌법 위반이 되지 않는 범위 내라고 생각한다”면서 “지방에서는 가끔 이런 판결이 나온다”며 판결 의미를 애써 축소했다.

반면 제1야당인 민주당의 오카다 가쓰야(岡田克也) 간사장은 “총리는 이번 판결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하며 그동안 행위를 반성해야 한다”고 신사 참배 재고를 촉구했다.

학계 반응도 나누어졌다. 헌법학자인 아오야마(靑山)대 고바야시 다카스케(小林孝輔) 명예교수는 “어떤 이유를 들어도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는 공적 행위가 분명하며 정치활동이자 종교활동인 이상 명백한 헌법 위반”이라며 판결을 지지했다. 반면 오하라 야스오(大原康男) 고쿠가쿠인(國學院)대 교수는 “이번 판결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고 말했다.

도쿄=조헌주특파원 hans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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