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의 소리 ‘알자지라’ VS 미국의 소리 ‘알후라’

  • 입력 2004년 2월 22일 18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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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의 자존심’이 이길까, ‘미국의 목소리’가 승리할까.

아랍의 민심을 얻기 위한 또 하나의 전쟁이 시작됐다. 반미정서를 주도하고 있는 아랍권 위성TV에 대항해 미국이 6200만달러를 투입해 최근 설립한 알후라 위성TV방송이 22일로 첫 방송을 내보낸 지 1주일째. 아랍권 방송사들이 정치적 시각으로 미국의 중동개입을 바라본다면, 미국은 알후라를 통해 문화적 시각으로 아랍권에 접근하며 차별화를 꾀하고 있다.

뉴욕 타임스는 21일 알후라에 대한 아랍인들의 평가가 ‘괜찮다’에서부터 ‘사탄(미국)의 이미지를 개선하려는 헛수고’라는 부정적 평가까지 다양하다고 보도했다.

▽정치냐 문화냐=알후라는 개국 당시 중동지역의 뉴스와 정보를 가장 먼저 보도하겠다고 큰소리쳤다. 하지만 지난 1주일간의 결과는 아랍권의 위성TV인 알자지라의 판정승.

16일 알자지라는 오후 뉴스에서 팔레스타인 수상 아메드 쿠레이가 아리엘 샤론 이스라엘 총리를 접견했다는 소식을 톱뉴스로 보도했다. 하지만 알후라는 오후 내내 서너 번째 뉴스로 보도하다 결국 저녁 뉴스에 메인으로 올려 ‘판정패’를 인정했다.

또 18일 오후엔 알자지라가 생방송 뉴스로 미군정 대변인의 목소리로 이라크 바그다드 현지 상황을 전하고 있는 동안 알후라는 영화배우 앤서니 홉킨스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방영했다.

알후라의 전략은 서구문화의 아랍권 ‘이식’인 것처럼 보인다. 다양한 방송기술과 세계의 화제를 보여주는 ‘핫 토픽(Hot Topic)’ ‘쿨 스터프(Cool Stuff)’ 등이 그것.

여기에서는 모스크바의 화려한 나이트클럽에서 가슴을 드러낸 남성 바텐더의 일하는 모습이 방영되기도 했다. 또 정치격론을 알자지라가 방영하는 것과 달리 토론 프로그램은 되도록 차분한 분위기로 제작 중이다.

▽편향성 논란=알후라는 14일 오전 11시 이라크 게릴라들이 바그다드 서부의 한 경찰서를 습격해 23명이 사망했다는 사건을 첫 뉴스로 내보냈다. 이 때 알후라는 이라크 주둔 미군과 동맹군을 ‘연합군’이라고 표현했다. 반면 알자지라는 같은 뉴스를 다루면서 ‘점령군’이라고 표현해 미국에 대한 명백한 입장 차이를 드러냈다.

또 알후라는 이스라엘에 대한 팔레스타인의 공격을 이스라엘의 점령으로부터 벗어나려는 독립투쟁으로 보지 않고 테러로 규정하는 등 친이스라엘 성향을 보였다.

시리아 정치비평가 이마드 파지 알 슈에이비는 “아랍과 미국의 대화가 진전된다면 알후라는 의미 있는 방송이 될 것”이라며 낙관했다. 반면 이집트 주간지 알-오스보아의 편집장 무스타파 바크리는 “알후라를 아랍의 지배하고 조정하려는 미국인들의 계획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비난했다.

이호갑기자 gd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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