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한국 의료시장 넘본다]<下>"10년뒤 한국추월"

  • 입력 2004년 1월 5일 18시 4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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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대 의대 삼성서울병원 소아과 이흥재(李興在) 교수는 해외 학회에 참석해 중국 의술을 접할 때마다 2000년 ‘상하이 제2아동병원’ 개원식 장면을 떠올린다.

이 병원은 미국의 호프재단과 보스턴어린이병원이 각각 자본과 기술을 지원해 설립한 것. 조인식 당시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의 부인 힐러리 여사와 장쩌민(江澤民) 중국 국가주석이 서명했다.

호프재단 책임자는 개원사를 통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중국의 심장수술 수준은 서울에 비해 5년가량 뒤져 있다. 5년 뒤에는 지금의 서울 수준으로 발전시키겠다. 20년 뒤에는 이곳을 중심으로 중국 전역의 의술을 아시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

이 교수는 이 말이 공언(空言)이 아니라 점차 현실화하고 있음을 절감하고 있다.

중국은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기 전에 의료체계를 완전히 바꾸었다. 공무원과 국유기업 근로자 1억여명에게 제공하던 무료 의료복지제도를 없애 일정 금액 이하는 자신이 부담하고 고액은 소속기관이 부담토록 했다. 그리고 일원화돼 있던 의료시스템을 공공의료와 민간의료로 나눴다.

민간의료를 활성화하기 위해 법령도 정비했다. 외국자본이 중국에 합자병원을 세우도록 했고 대주주가 되는 것도 허용했다. 외국 의료면허소지자가 정부의 허가를 받아 의료활동을 할 수 있도록 했다. 대신 지역별로 외국 병의원의 수를 제한할 수 있도록 했으며 합자병원 의료진의 대부분을 중국인으로 채우도록 해 실익을 꾀했다.

이에 따른 변화가 현재 서서히 나타나고 있으며, 앞으로 세계 의료계의 판도를 바꿀 것으로 예측되기도 한다.

중국 위생부의 한 보고서에 따르면 2000년 4784억위안(약 72조원)이던 중국의 의료시장 규모가 2025년에는 6조위안(약 900조원)으로 성장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중국 의료시장의 성장은 세계 제약시장의 활성화로 이어지고 있다. 미국제약협회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의 제약시장은 2001년 150억달러(약 18조원)에서 2006년 600억달러(약 72조원)로 급성장할 것으로 추산된다.

최근 국내 병의원의 중국 진출을 주도하고 있는 보건산업벤처협회 박인출(朴仁出) 회장은 “현재 중국 의료의 전반적 수준은 한국보다 낮지만 일부에서는 기술력의 역전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면서 “10년 뒤의 상황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중국에서 연간 소득이 8000달러 이상인 사람이 한국 인구와 맞먹는 4500만명이나 돼 이들을 겨냥한 고급 의료서비스 산업이 급성장하고 있다는 것. 일부 안과병원은 한국에도 없는 고가의 최신 라식수술 장비를 갖추고 있으며 1회 진료에 근로자 평균 월급 이상의 비용이 드는 피부미용센터와 성형외과 등도 성업 중이다.

또 미국과 중국이 2001년 베이징(北京)에 합자 설립한 허무자푸얼(和睦家婦兒)의원은 정상 분만비가 700여만원이지만 상류층 환자가 줄을 잇고 있다. 이 병원은 처음엔 외국인 환자만 받았지만 지금은 중국인 환자도 받는다.

국내에서도 중국을 벤치마킹해 의료체계를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으로 나누고 개방과 규제 철폐를 통해 민간부문의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재정경제부와 외교통상부, 병의원 등에서 이런 주장을 펼치고 있으며 △영업법인의 병의원 설립 △영업이익의 해외송금 허용을 통한 외자 유치 △민간보험 도입 등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 보건정책 결정에 핵심 역할을 하는 보건복지부의 상당수 공무원과 일부 학자들은 한국의 의료 실정이 중국과 달라 의료시장을 개방하고 규제를 철폐했을 때 공공의료 분야가 급격히 몰락한다며 섣부른 개방에 반대하고 있다. 공공의료가 활성화될 때까지 의료의 상업적 측면을 제한해야 한다는 논리다.

그러나 이 순간에도 중국의 의료산업은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불과 몇 년 뒤 중국의 의료진이 서구의 서비스와 의술로 무장하고 한국에 물밀듯이 진입할지도 모른다. 의료계에서는 중국의 의료산업이 한국에 진출할 때 병·의원이라는 항공모함을 앞세워 들어올 것으로 본다. 이 항공모함에는 제약, 의료기기, 교육기자재 등이 탑재될 수 있다. 지금부터라도 이에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이성주기자 stein3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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