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11·9 총선 이후]<下>거세지는 변화바람

  • 입력 2003년 11월 12일 19시 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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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신조(安倍晋三·49) 자민당 간사장은 중의원 선거운동 기간 중 접전을 펼치는 자민당의 다른 후보들을 지원하느라 지역구인 야마구치(山口)현을 한 번도 찾지 않았다. 부인이 대신 선거운동을 했지만 결과는 유효 투표의 80%를 휩쓰는 압승.

민주당의 선거운동을 총지휘한 오카다 가쓰야(岡田克也·50) 간사장도 미에(三重)현에서 자민당 후보를 더블 스코어 차로 따돌리고 당선됐다.

보수신당과 사민당의 당수 등 거물 정치인들이 지역구에서 낙선의 고배를 마시는 이변도 있었지만 차기 또는 차차기 총리를 노리는 차세대 주자들은 이번 선거를 자신의 정치적 위상을 높이는 기회로 유감없이 활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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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30대의 신인 중 35명이 등원에 성공하는 등 세대교체 흐름도 거세게 나타났다. 대를 이어 의원직을 넘겨받는 일본 특유의 ‘정치세습’ 현상은 여전했다.

▽‘포스트 고이즈미’ 각축 시작=자민당 차세대 주자로 거론되는 이들은 선거가 끝나자 대체로 자세를 낮추는 모습이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의 국정 장악력이 예전 같지는 않겠지만 임기가 많이 남은 만큼 지금은 기반을 다지는 게 급선무라는 판단에서다.

아베 간사장은 고이즈미 총리와 나란히 자민당의 양대 간판으로 나서 여론조사에서 나타난 인기가 ‘거품’이 아님을 입증했다. 지명도가 낮은 신인이나 격전을 앞둔 후보일수록 아베 간사장과 함께 찍은 사진을 선거 포스터로 활용했다. 그는 소속 파벌인 모리(森)파의 세력이 크게 늘어 다음 총재선거 때 지원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자민당은 고이즈미 총리가 9월 실시한 내각 개편에서 40대와 50대 중견의원을 대거 발탁해 인물층이 두껍다. ‘일본판 네오콘’의 대표주자인 이시바 시게루(石破茂·46) 방위청 장관을 비롯해 다니가키 사다카즈(谷垣禎一·58) 재무상, 나카가와 쇼이치(中川昭一·50) 경제산업상, 모테기 도시미쓰(茂木敏充·47) 오키나와 및 북방담당상 등이 선두권을 형성하고 있다. 이들은 일본의 우경화를 반영해 자위대 재무장과 평화헌법 개정에 적극적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민주당에서 차세대를 노리는 인물들은 “정권교체가 꿈이 아닌 현실로 다가왔다”며 고무된 표정이다. 특히 1년 전 민주당 대표 경선에 나서 간 나오토(菅直人) 대표와 대결을 펼친 오카다 간사장은 기회 있을 때마다 정치적 포부를 솔직히 드러내고 있어 향후 행보가 주목된다.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45) 국회대책위원장, 에다노 유키오(枝野幸男·39) 정조회장, 방위청 장관 감으로 꼽히는 우익성향의 마에하라 세이지(前原誠司·41) 의원도 민주당의 약진에 힘입어 정치적 도약을 꿈꾸고 있다.

▽세습 후보도 희비 엇갈려=중의원 의원의 평균연령은 53.1세. 지난 선거보다 1.1세 젊어졌다.

최연소 의원은 동북지방 아키타(秋田)현에서 당선된 민주당의 데라다 마나부(寺田學·27) 의원. 부친이 아키타현 지사여서 적지 않은 도움을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그의 당선은 세대교체 열풍을 상징하는 동시에 가문이 중시되는 일본 정치의 한계도 드러냈다고 일본 언론은 분석했다.

이번에 당선된 세습의원은 122명. 전체의 4분의 1에 이른다. 부친이나 장인의 지역구를 물려받아 처음 출마한 후보는 38명으로 이 가운데 20명이 당선됐다. 신인 후보의 당선율(26.6%)보다 크게 높다.

다만 자질도 없는데 가문의 후광만으로 의원이 된 사례는 눈에 띄게 줄었다.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 도쿄도지사의 3남 히로타카(宏高·39)는 은행원을 그만두고 부친의 옛 지역구에서 출마했지만 ‘서민의 아들’임을 내세운 민주당 후보에게 밀려 낙선했다. 간 민주당 대표의 아들 겐타로(源太郞·30)도 조부 때부터의 기반인 오카야마(岡山)에서 출마했지만 큰 표 차로 떨어졌다.

▽‘정계재편의 핵’ 다나카=비서급여 편법지급 문제로 의원직을 사퇴했던 다나카 마키코(田中眞紀子·59) 전 외상은 무소속으로 당선돼 화려하게 정계에 복귀했다. 주부층에서 인기가 높아 3년 전 고이즈미 정권의 출범에 공헌했던 그는 “고이즈미 정권은 구호뿐인 정권”이라며 독설을 퍼붓고 있어 자민당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 본인 스스로 정계재편에 의욕을 보이고 있고 민주당도 다나카 전 외상의 대중적 인기에 솔깃한 눈치여서 일본 정치 판도를 바꿀 변수로 주목받고 있다.

도쿄=박원재특파원 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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