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 요람 獨 “분배에서 성장으로”

  • 입력 2003년 7월 11일 19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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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평범한 직장인이었던 르네 프랑크(52·여)는 4년 전 직장을 그만뒀다. 어머니가 갑자기 숨지자 상실감으로 근로의욕을 잃은 것. 그렇지만 먹고 사는 걱정은 없었다. 국가는 그녀에게 3주간 온천 휴양을 시켜준 뒤 매월 실직 전 임금의 60%를 실업수당으로 줬다.

그러나 지난해 말부터 안정된 일상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실업수당 담당 관리들은 취업을 거부하면 실업수당을 깎겠다고 경고했다. 지원을 계속 받으려면 차를 파는 등 개인구조조정을 먼저 하라는 요구도 덧붙여졌다. 그녀는 난생 처음 먹고 사는 문제로 앞날이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미래를 걱정하기 시작한 것은 프랑크씨만이 아니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10년째 경기침체에 시달리고 있는 독일이라는 ‘거함’이 서서히 항로 변경을 도모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세계 3위 경제대국인 독일 경제는 제2차 세계대전 후 최악의 슬럼프에 빠진 상태. 지난해 경제성장률은 0.2%에 불과했고, 실업률은 거의 11%에 육박한다. 특히 실업자 중 1년 이상 무직인 장기실업자가 50%로 미국의 6%와 극명히 대조된다. 고임금을 피해 외국으로 사업장을 옮기는 기업이 늘고 있다. 지난 30년간 세금을 내는 인구(노동인구)는 4% 증가한 데 비해 연금과 실업수당을 받는 세금 수혜자는 80%나 늘었다.

이처럼 ‘우울한’ 경제현실이 이어지면서 그동안 성역처럼 여겨져 왔던 사회복지제도에 고까운 시선이 모아지고 있다. 현재 독일의 복지부문 지출액은 전체 국내 총생산의 30%로 스웨덴에 이어 세계 2위.

물론 독일경제의 약세를 사회복지제도 탓만으로 돌리는 것은 무리라는 지적이 많다. 미국 경제의 침체로 인한 수출 부진, 통일 후 거의 13조달러가 들어간 통일비용, 유럽중앙은행의 고금리 정책 등 독일 경제를 괴롭히는 요인은 많다.

하지만 중도좌파인 독일 정부도 최근 들어 과다한 사회복지 부담이 경제 약화의 한 요인임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는 지난주 “이제 이미 가진 걸 보호하는 데서 탈피해 미래의 새로운 기회를 창출하는 쪽으로 생각을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정부는 몇 개월 전부터 △실업자 복지혜택 축소 △건강보험에 사보험 도입 △근로자 보호법 완화 등을 제안하고 있다. 일부 장관들은 휴가 및 휴일 단축을 주장하고 있다.

그럼에도 격렬한 반발은 없다. 10여년 전 헬무트 콜 총리가 휴일 단축을 언급했다가 여론의 분노에 부닥쳐 철회했던 것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다. 사회복지제도를 건드리는 데 대한 민감도가 서서히 둔해지고 있는 것.

광업·화학·에너지노조의 후부르투스 슈몰트 위원장은 “이제 모든 것을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은 바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옛날 같으면 상상도 하기 힘든 발언이다. 최근 35만여명을 상대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70%의 응답자가 “개혁이 시급하다”고 응답했다.

그러나 개혁의 필요성에 공감하는지를 떠나 많은 독일인들은 ‘모든 것이 안전하게 보장돼 있던 좋은 시절이 끝나가는 것이 아닌가’하는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


이기홍기자 sechep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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