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주년 상트페테르부르크, 왜 주목받나]러 '변혁의 중심'

  • 입력 2003년 5월 26일 19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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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를 향해 열린 창(窓)이 혁명의 도시로, 이제 다시 개혁의 상징으로….” 27일로 도시건설 300주년을 맞는 제정 러시아의 옛 수도 상트페테르부르크. 주요 고비마다 러시아는 물론 세계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며 변혁의 현장이 되어온 이 도시로 세계의 눈길이 다시 쏠리고 있다. 이번주에 50여개국 정상이 방문할 예정.》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변방’ 러시아를 ‘위로부터의 개혁’을 통해 근대화시키려 했던 러시아의 첫 계몽군주 표트르 대제에 의해 건설됐다. 발트해로 나가는 네바강 하구의 늪지대에 유럽의 건축가들을 불러 유럽식으로 건설한 인공 도시.

러시아 정교의 성인 성(聖)페트로와 표트르(페트로의 러시아식 발음) 대제의 이름을 따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명명했다. 독일식 이름에서 서구화를 향한 집념을 짐작할 수 있다.

표트르 대제는 1712년 귀족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수도를 모스크바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옮겼다. 대문호 알렉산드르 푸슈킨이 ‘유럽을 향해 열린 러시아의 창’이라고 표현했듯이 이곳은 제정 러시아의 정치 경제 문화 예술의 중심지로 근대화를 주도했다.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 이 도시는 제정 러시아의 붕괴를 앞당겼다. 이곳을 통해 진보적인 사상이 유입 전파됐기 때문. 농노제와 전제정치 철폐를 위한 데카브리스트의 반란(1825)과 급진 혁명 세력인 ‘인민주의자들’의 혁명운동, 피의 일요일(1905), 2월 혁명(1917)이 이어지면서 혁명과 반란의 도시로 변했다. 결국 스위스에서 비밀열차를 타고 잠입한 볼셰비키 지도자 블라디미르 레닌이 10월 혁명(1917)을 통해 제정을 붕괴시키고 소비에트 정권을 수립했다.

1990년대 초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수도 모스크바와 함께 반소(反蘇) 운동의 거점으로 다시 역사의 전면에 나섰다. 2000년에는 이 도시 출신인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집권하며 개혁의 본거지로 떠올랐다. 푸틴 대통령이 300여년 전 표트르 대제처럼 ‘위대한 러시아 재건’을 내걸고 이곳 출신 ‘페테르 마피아’를 동원해 대대적인 개혁 드라이브를 걸기 시작한 것.

푸틴 대통령이 직접 300주년 기념행사 준비위원장을 맡아 4년 동안 15억달러(약 1조8000억원)의 중앙정부 예산을 들여 도시를 재단장한 것이나 각국 정상이 앞다퉈 이곳을 찾는 것도 이러한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역사성과 상징성 때문이다.

모스크바=김기현특파원 kimki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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