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걱정되는 '우향우 日本'의 有事법제

  • 입력 2003년 5월 14일 18시 2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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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정부가 40년 ‘숙원’을 풀었다. ‘유사(有事)사태’, 즉 북한이 일본을 무력 공격하는 사태를 가정한 상황에서 각종 대책을 규정한 법률을 제정, 또는 개정하게 된 것이다. 일부 의원이 반대하고 있지만 여야 합의로 제출되는 만큼 15일 중의원 통과는 무난할 전망이다.

집권 자민당은 “국가 안보에 있어 중요한 전진”이라며 희색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제정 경위를 살펴보면 석연치 않고 앞으로 전개될 사태도 우려된다.

이른바 ‘유사법제’ 연구는 63년 2월부터 6월까지 방위청 일부 참모들이 한반도에 전쟁이 발발해 일본에 파급될 경우 자위대의 대응책 등에 관해 비밀 도상연습을 한 일이 시초. 이 사실은 2년 뒤 야당 의원에 의해 폭로된 뒤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국가 총동원 체제를 목표로 전쟁준비를 하려는 것” “군부의 독주” 등 비난이 쏟아졌다.

당시는 동서대립이 극심한 냉전체제였음에도 일본 군국주의의 폐해를 기억하는 이들의 반대가 거세 일단 논의는 없었던 일이 됐다. 하지만 불씨는 남아 77년 정부 지시로 관련 연구가 공식 개시됐다.

소비에트연방의 해체로 냉전 체제가 무너지고 미국의 1극 체제가 형성돼 유사법제 논의는 아주 사라진 듯했다. 그러나 93년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 2001년 미국의 9·11테러를 계기로 논의가 부활, 진전되면서 결국 법제화에 이르게 됐다. 9·11테러 후 미국의 강경 보수 분위기에 편승한 측면도 크다.

우려되는 대목은 40년 전 첫 논의 때에 비해, 아니 수년 전과 비교하더라도 반대의 목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게 된 일본 사회의 ‘우향우(右向右)’ 분위기다. 제1야당인 민주당은 99년 정부가 자위대의 해외활동 확대를 내용으로 하는 테러대책지원법을 제정하려 할 때 강력히 반대했지만 이번에는 적당히 체면만 세우고 찬성으로 기울었다,

77년 일본 정부는 유사법제 연구를 공식 개시하면서 항간의 우려를 의식해 “전쟁준비도 아니고, 입법준비도 아니며 징병제나 계엄령과도 관계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말과 달리 결국 법 제정으로 이어졌다. 그렇다면 머잖아 유사법제 보완을 앞세워 이른바 ‘평화헌법’ 개정을 통한 군대 보유, 징병제 도입이 시도되지 않을 것이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 것인가.

도쿄=조헌주특파원 hans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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