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덜마시고…애인과 키스안하고…중국인들이 달라졌다

  • 입력 2003년 5월 9일 18시 5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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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재앙으로 중국인들의 생활이 크게 바뀌고 있다. 국가신용도의 실추나 경제적 타격 등 부정적 영향도 적지 않지만 사회를 건강하게 하는 좋은 계기로도 작용하고 있다.

반관영통신사인 중국신문사가 발행하는 신문주간은 8일 베이징(北京) 상하이(上海) 광저우(廣州) 시민 314명을 대상으로 생활 변화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 “사스는 9·11 테러가 미국 사회에 미친 영향보다 더욱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변화를 중국에 가져오고 있다”고 전했다.

▽직장 이탈과 대인 기피=중국 정부가 지난달 20일 베이징의 사스 실태를 전격 공개한 뒤 베이징 시민의 54%만이 직장에 정상 출근하고 있다.

2%는 아예 사표를 냈고 7%는 사스가 없는 외국이나 안전지대로 피신했으며 나머지는 무단결근하고 있다. 또 32%는 상부의 출장 명령을 거부했다. 사스 감염 공포가 직장의 정상적 기능을 마비시키고 있다는 것.

대인 기피현상도 심각하다. 상대와 접촉할 때 1m 이상의 거리를 두고 얘기하는가 하면 은행이나 상점 등의 직원들은 고객과 대화를 꺼리거나 문의에 거의 응하지 않아 불친절하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

70%가 친척이나 친구와의 왕래를 끊었고 47%가 애인과의 포옹이나 키스를 하지 않는 것으로 조사됐다. 또 50%가 악수를 하지 않고 절을 하며 가정에서 식사를 할 때 각자의 그릇에 따로 담아 먹거나 부부간에도 침대를 같이 쓰지 않는 현상마저 나타나고 있다. 대신 전화나 전자우편을 통한 간접 접촉이 늘고 있다.

▽사회의 건전화 계기=술집 가라오케 PC방 호텔 음식점 등이 일제히 문을 닫아 밤 시간이 길어지면서 가족간의 대화 시간이 늘어났고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습관이 붙었다.

베이징 시청(西城)구 법원에 따르면 가정이 원만해지면서 1주일 평균 70건이었던 이혼 소송이 지난달 하순부터 40건 이하로 절반가량 줄었다.

거리에 침 뱉는 행위가 거의 없어졌고 집과 거리를 소독하는 생활이 일상화되는 등 공중위생 관념도 나아졌다.

또 개혁 개방 20여년 동안 ‘돈 버는 것이 최고’라는 금전 만능주의와 개인주의 성향이 바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중국 경제가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해 글로벌 경제에 편입한 것처럼 세계보건기구(WHO)의 환경 기준에 맞춤으로써 공동체의 안전을 지켜야 한다는 인식이 형성되고 있다. 개인주의보다는 정부와 시민간의 신뢰, 시민과 시민간의 협조가 중요하다는 공동체 의식이 생기고 있다는 것.

재미 사회학자인 위안웨(袁岳) 박사는 “중국인들의 이런 인식이 얼마나 갈지는 아직 의문이지만 중국의 현대화 이행 과정에서 이번 사스 파문이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만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베이징=황유성특파원 ys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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