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좌파 대통령 룰라 뜻밖의 보수정책…경제 살려

  • 입력 2003년 4월 15일 18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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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룰라 신봉자가 됐다.”

뉴욕 스탠더드차터드 은행 미주담당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10일로 재임 100일을 지낸 루이스 이나시오 룰라 다 실바 브라질 대통령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올해 1월 취임한 룰라 대통령은 초등학교 졸업의 학력, 구두닦이, 철강 노동자 출신에 브라질 최초의 좌파 노동자당 대통령이라는 점으로 취임 전부터 안팎에서 우려 섞인 시선을 받아왔다.

억눌린 욕구의 분출을 제어함이 없이 과거와의 단절만을 전면에 내세워 선심 정책이나 실효성 없는 급진책을 남발하다 보면 금융시장이 국제적 신뢰를 잃어 과거 아르헨티나나 멕시코처럼 ‘중남미발 금융위기의 진원지’가 될 수도 있다는 게 그 요지였다.

100일을 넘긴 그의 중간 성적표는 일단 합격점을 받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는 “그가 ‘뜻밖의 보수주의(unexpected conservatism)’로 금융시장 안정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내렸다.

룰라 대통령은 중앙은행 총재 임명에서 ‘정권 인수 연착륙’을 꾀하는 실용적 면모를 보였다. 미국 보스턴 은행 총재를 지냈으며 직전 집권당인 중도우파 사회민주당 소속의 엔리케 메이렐레스를 임명한 것. 이후 인플레이션과 환율을 잡기 위해 취임 전 1년간 세 차례나 인상된 중앙은행 콜금리를 25%에서 26.5%로 또 올렸다. 환율이 안정을 찾자 브라질의 대외채무 이자도 거의 50% 수준이나 줄어들었다.

3월 브라질 종합주가지수인 보베스파 지수는 9.7%나 급등, 상승률 세계 1위를 기록했다. 보베스파 지수는 지난해 10월 8,371까지 떨어졌지만 11일에는 11,718로 반년 만에 약 40% 올랐다. 대외채무 상환능력 악화 정도를 나타내는 국가위험도는 1월에 비해 30%나 낮아졌다.

앞서 정권을 잡은 베네수엘라의 좌파 대통령 우고 차베스와 비교하면 매우 대조적이다. 98년 취임한 차베스 대통령은 지지 기반인 빈곤층에 호소하는 포퓰리즘과 급진적인 좌파 실험을 하면서 재계 노동계 종교계 언론계와 잇달아 충돌했다. 올 초엔 생필품이 부족해지자 군인들을 동원해 외국 기업 제품을 몰수, 빈곤층에게 배급했다. 그 결과 포드 마이크로소프트 로열더치셸 등 다국적 기업이 빠져나가는 등 경제가 활력을 잃어 빈곤층의 생활은 나아지지 않고 있다.

룰라 정권 역시 이 같은 위기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금융시장이 안정을 찾는 대신 경기 및 고용창출 부진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 실업률은 1월 11.2%, 2월 11.6%나 됐다. 노동계층과 빈농층이 정권에 등을 돌릴 가능성도 있다. 당내에서도 룰라 정권이 지나치게 국제금융자본을 의식해 좌파적 정신을 버리고 신자유주의 정책에 경도됐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세제개혁 연금개혁 교육개혁 치안문제 등 해결해야 할 브라질의 고질병도 첩첩산중.

여론조사 결과 “다시 대통령 선거를 한다면 룰라 대통령을 찍을 것”이라는 응답자가 64%나 되는 등 현재까지 룰라 정권에 대한 국민의 애정과 지지는 높은 편. 그러나 ‘브라질판 제3의 길’이 성공할지는 좀더 두고봐야 한다는 게 중론이다.

권기태기자 kkt@donga.com

김승진기자 sarafi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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