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경제]부시 VS 레이건

  • 입력 2003년 4월 3일 16시 4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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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으로 한 나라의 최고 지도자는 국가의 운명을 좌우해 왔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질서를 선도하고 있는 미국 대통령의 비전과 의사결정은 미국뿐만 아니라 지구촌의 운명을 가르고 있다. 실제로 1980년대 미국의 40대 대통령인 공화당의 로널드 레이건(재임기간 1981∼1989년)의 정책은 군사적 측면에서 지구촌의 질서를 재편하고 시들어가는 미국경제를 회생시켜 세계 경제지도를 바꾸어 놓았다. 그의 업적은 미국의 입장에서 볼 때 1930년대 대공황을 뉴딜 정책으로 극복한 32대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에 못지 않게 빛나는 것이다.

돌이켜 보면 20세기 미국의 외교·안보 면에서 가장 위협요인은 구 소련 독재정권의 핵 능력이었다. 이에 레이건은 소련을 ‘악의 제국’으로 규정하고 군비경쟁이라는 과감한 맞대응전략을 구사했던 것이다. 이러한 군비경쟁에서 경제력을 소진한 소련은 결국 군축협상에 응하게 되고 개혁·개방에 나섬에 따라 반세기 이상 지속된 동·서 냉전시대가 끝나게 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레이건은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기념비적인 업적을 쌓았다. 그는 80년대 미국 정보기술(IT)산업 발흥의 기반이 되었던 ‘신자유주의’ 정책의 틀을 마련했다. 과감한 규제개혁으로 산업의 구조조정을 유도해 기존 미국기업들의 경쟁력을 제고하고 신산업이 탄생할 수 있는 길을 열었던 것이다. 게다가 레이건은 제조업의 막강한 경쟁력을 바탕으로 지난 세기 동안 미국을 추월할 것 같았던 일본을 효과적으로 제압했다.

잘 알려진 대로 레이건은 슈퍼 301조라는 통상법을 기반으로 미·일 양국간의 교역 불균형을 시정하기 위해 80년대 전반에 걸쳐 본격적인 일본 두드리기(Japan Bashing)에 나섰다. 그 결과 레이건 취임 당시 달러당 250엔대로 터무니없이 저평가되었던 엔화는 그의 퇴임 무렵 달러당 120엔대로 가치가 급상승했다. 이러한 미국의 집중적인 일본 견제 정책이 90년 일본의 자산, 특히 부동산 버블을 터뜨려 일본 금융기관들을 부실하게 만들고, 지금까지 일본경제를 불황의 늪에 빠지게 한 것이다. 할리우드 영화배우로서 결코 대성했다 할 수 없는 레이건은 정치인으로 변신해 90년대 미국 독주시대라는 황금기를 열었다.

같은 공화당 출신의 43대 조지 W 부시대통령도 9·11테러 사태 이후 국가안보가 위협받는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부시도 레이건 대통령 때와 같이 테러집단과 지원국가들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정면대응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이번에는 미국의 국제적 위상이 크게 흔들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현재 미국은 전통 우방국인 프랑스나 독일의 반대에 부닥쳐 유엔의 지지없이 이라크전을 치르고 있다. 또한 테러전의 속성상 실체가 없는 적과의 싸움에서 성과도 불투명한 상황이다. 부시 대통령이 대테러전에서 완벽한 승리를 거두어 미국을 군사적으로 지구촌의 확실한 규율반장으로 다시 한 번 자리매김하게 할지 현재로선 확신할 수 없는 실정이다.

더욱이 경제적 측면에서 부시 대통령은 국제금융가들로부터 후한 점수를 받지 못하고 있다. 지금까지 부시는 공화당 정권의 단골 메뉴인 감세정책 이외에는 현재 IT버블 붕괴 후 어려운 미국경제를 수습할 경제정책과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이제 미국경제는 또다시 쌍둥이 적자의 수렁으로 점차 빠지고 있는 것이다.

미국 정부의 성공 여부가 이처럼 불투명하다 해도 우리는 미국에 대해 “NO”라고 말할 수 없다. 89년 일본의 경험을 상기해 보자. 일본 최고기업인 소니의 창업자 아키오 모리타와 현재 도쿄도 지사인 이시하라 신타로는 80년대 일본 경제의 성공에 자만하여 미 공화당 정부에 대해 ‘NO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이라는 책을 공동저술해 일본열도를 열광하게 만들었다. 결과는 1년도 안 돼 90년 이후 일본 경제 ‘상실의 시대’를 맞이한 것으로 나타났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시장개방으로 특히 금융면에서 대미 의존도가 더욱 높아진 우리로서는 이러한 일본의 경험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겠다.

정문건 삼성경제연구소 전무(경제학박사)

○미국 밴더빌트대 경제학박사(거시경제 및 정책)

○한국은행 조사1부 전문위원

○삼성경제연구소 상무(경제동향실 실장)

○현 삼성경제연구소 경제연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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