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일본의 도덕성이 '패소'했다

  • 입력 2003년 3월 26일 19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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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출신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일본 정부의 배상 책임을 인정했던 ‘시모노세키 소송’이 5년 만에 뒤집혔다. 3명의 위안부 할머니를 포함한 10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상고심 재판에서 일본 최고재판소는 “일본 정부가 배상할 책임이 없다”며 원고 패소 판결을 내린 것이다. 이는 단순한 원심 파기가 아니라 일본 양심의 파기이며, 위안부들만의 패소가 아닌 일본 도덕성의 패소라고 하겠다.

1998년 야마구치 지법 시모노세키 지부는 위안부 문제와 관련된 일본의 국가 책임을 처음으로 인정, 위안부 희생자들에게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일본이 위안부에 대해 배상하는 법을 만들지 않은 것 자체가 중대한 인권침해”라는 시모노세키 지부의 판결은 일본의 양심을 깨우고 한일관계의 발전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2001년 2심 재판에서 히로시마 법원이 1심 판결을 뒤엎은 데 이어 끝내 최고재판소까지 일본 정부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이번 최종판결은 식민지 지배의 정당성을 강조해 온 일본 각료들의 끊임없는 망언과 역사 교과서 왜곡문제, 일본의 정치 우경화 추세와 함께 양국관계를 악화시킬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전후 50년 이상이 지났는데도 역사를 직시하지 않고 잘못을 책임지지 않으려는 국가는 국제무대에서 정치적 지도국의 위치에 올라설 수 없다. 그런 차원에서 정부는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을 갈망하고 있는 일본이 과연 그에 걸맞은 지도력을 갖고 있는지 심각하게 생각해 보아야 한다.

위안부에 대한 정부차원의 배상은 1999년 유엔인권위원회가 공식 채택한 사항이다. 법적 책임이 끝났기 때문에 국가배상을 할 수 없다는 일본의 논리는 군색하다.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등 관련단체들은 위안부 문제를 더 이상 일본 정부와 법원에 맡길 수 없다며 국제사법재판소에 소송을 제기할 계획을 밝혔다. 이제는 우리 정부도 나서야 한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인권문제는 이제 민간차원의 소송 단계를 벗어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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