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바그다드 유일한 한국외교관 박웅철 1등서기관

  • 입력 2003년 3월 19일 18시 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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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최후 통첩과 함께 바그다드 주재 한국대사관은 18일(한국시간) 철수했다. 바그다드에서 일해온 유일한 한국인 외교관인 박웅철(朴雄哲·41) 1등서기관이 개전을 앞두고 이날 요르단 암만으로 나온 것이다.

그가 수행한 마지막 임무는 이라크 재외 국민 소개 작업. 암만 주재 한국대사관에 적을 두고 한 달에 1주일 정도씩 바그다드로 들어가 활동해온 그는 15일 마지막으로 바그다드행 1000㎞ 육로 여행에 나서 현지 한국인의 철수를 돌봤다.

17일 오전까지 바그다드에 28명의 한국인이 남아 있었으나 한상진 이라크 평화팀원과 바그다드대 유학생인 장영재씨 가족 등 8명을 제외하고 모두들 이날 빠져나왔다.

“바그다드 상황이 과거 걸프전 때와는 다른 것 같다. 당시에 ‘사재기’는 없었다. 이번에는 기름을 채우러 온 차들로 주유소마다 미어터진다. 상점 주인들은 내놓은 물건들을 거둬들여 집에 갖다 놓고 있다. 시가전을 염두에 두는 모습이었다.”

그는 또한 “집집마다 폭음에 유리 파편이 튀지 않도록 유리에 테이프를 붙이고 있거나, 뒷마당에 우물과 임시 방공호를 파놓고 있었다”고 전했다.

그는 “전쟁이 코앞에 다가오자 바그다드에서 요르단 암만으로 나오는 차 삯도 평소 100달러 하던 게 500달러까지 치솟았다”며 “그나마 지프를 구하지 못해 한씨를 제외한 한국인 평화팀원 등은 대절한 버스로 17일 밤 9시경 바그다드를 출발했다”고 전했다.

전시에 소요 사태가 발생하면 바그다드의 외국 공관은 가장 습격받기 쉬운 대상이 된다. 이 때문에 바그다드 한국 공관에서 일해온 이라크인 카말 압바스가 남기로 했다.

박 서기관은 “91년 걸프전 때도 요르단 암만 주재 한국 대사관원으로 전운 가득한 이라크를 지켜봐야 했다”며 착잡해했다. 그는 “지금이 이라크로서는 1년 중 가장 날씨가 좋을 때”라며 “평소라면 소풍 나가 양고기를 구워 먹을 사람들이 피란 걱정에 휩싸여 있다”고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75년 서울 남대문중 1학년 때 요르단에서 무역업을 하던 아버지 박흥운씨를 따라 암만으로 건너왔다.

요르단과 카이로에서 공부해 석사학위를 취득했으며 이집트 사우디 대사관 생활을 거쳤다. 아랍 이름은 ‘선(善)하다’는 뜻의 ‘살레헤’.

암만=권기태특파원 kk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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