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3년 이전에도 하와이 移民”…美洲이민 100주년 연구결과

  • 입력 2003년 1월 12일 18시 1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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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은 미주 한인 이민 100주년이 되는 날이다. 이를 계기로 미주 한인들에 관한 새로운 연구결과가 나오고 있다.

▽미주 독립운동 첫 통합모임=1908년 이승만(李承晩·초대 대통령) 박용만(朴容萬) 선생 등 미주 전역에서 활동하던 독립운동단체 대표들이 콜로라도 덴버시에 모여 처음으로 항일무장운동운칙 등 독립운동의 골격을 마련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정부기관인 독립기념관 산하 독립운동사연구소의 홍선표(洪善杓) 책임연구원은 12일 “1908년 7월11∼15일 ‘북미 대한인 애국동지대표회’가 열렸던 덴버시를 방문해 조사한 결과 이 모임이 미주 한인독립운동의 한 획을 긋는 역사적 사건이었음이 파악됐다”고 밝혔다.

연구소의 자료에 따르면 덴버에서 독립운동을 한 박 선생을 비롯, 이승만 윤병구(尹炳求·뉴욕 대표) 이명섭(샌프란시스코 대동보국회 대표) 김사현(캔자스 대표) 등 미주 전역 독립운동가 36명이 모여 한민족의 국권회복을 위해 △행동을 통일하고 △무장운동을 펼친다는 두 가지 방향을 채택했다.

독립운동가들의 최초 통합모임은 당시 덴버 지방신문인 ‘로키 마운틴 뉴스’ 등에 사진과 함께 보도됐다. 홍 연구원은 “재미사학자인 방선주 교수 등 일부 민간학자들이 덴버 모임에 대해 간단히 언급한 적은 있으나 정부연구기관이 그 의미를 인정한 것은 처음”이라며 “중국을 중심으로만 기술돼 온 국사교과서에 미주 독립운동이 반영될 계기를 맞았다”고 말했다.

대표회가 채택한 두 가지 운동 방향에 따라 1909년 2월1일 하와이의 한인합성협회와 샌프란시스코 공립협회가 통합해 국민회가 탄생했고 1년 뒤 대동보국회까지 국민회에 합류, 1910년 2월 미주 지역 독립운동을 총 지휘했던 대한인국민회가 설립된다.

또 무장운동의 원칙에 따라 박용만 선생은 1910년 6월 네브래스카의 해스팅스 칼리지와 제일장로교회의 재정지원을 받아 한인 소년병 학교를 세워 해외 한인 최초의 무장훈련을 실시했다.

▽‘이민 전(前) 이민’=100년 전 하와이항에 기착한 한인 이민 102명에 앞서 이민한 한인 최소 174명이 하와이에 살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인 이민사료를 추적해 온 이덕희 미주 한인 이민 100주년 기념사업회 부회장에 따르면 최초로 하와이로 이민한 한인은 1901년 1월9일에 호놀룰루에 도착한 피터 루라는 기록이 있다. 또 같은 해 6월30일 5명의 한인 노동자가 호놀룰루에 도착했다. 그 중 장성봉씨는 1949년까지 호놀룰루 고등법원과 경찰서에서 통역관으로 일한 것으로 기록돼 있으며 나머지 4명의 행적은 확인되지 않았다.

뉴욕=홍권희특파원

konihong@donga.com

하와이=박래정기자

eco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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