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값 반토막… 실업률 사상 最高…쇠락하는 홍콩경제

  • 입력 2003년 1월 9일 17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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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의 진주’ 홍콩이 쇠락하는가.

둥젠화(董建華) 홍콩 특별행정구 행정장관이 8일 “홍콩의 경제상황은 2차대전 이후 최악”이라며 “막대한 재정적자를 제대로 조절하지 못하면 홍콩 금융시장이 투기세력의 공격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무시무시한’ 경고와 함께 공무원 임금 삭감, 공공서비스 지출 축소 등의 정책을 내놨지만 이에 대한 홍콩 국민들의 반응은 “너나 잘 해”라고 파이낸셜 타임스(FT) 등이 9일 전했다. 》

▽앓아 누운 홍콩경제=홍콩은 1997년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이 발표하는 국가경쟁력 순위가 3위였지만 지난해 9위로 떨어졌다.

홍콩의 2002회계연도 첫 8개월간 재정적자는 708억홍콩달러(약 90억달러)로, 정부가 예상한 1년 전체 예상치보다도 60% 많은 규모다.

홍콩은 4년 넘게 디플레이션을 겪고 있다. 97년 영국에서 중국으로 주권이 반환된 이후 부동산 가격이 60%나 떨어졌다. 홍콩 주민들이 갖고 있는 자산의 절반은 부동산이기 때문에 가계의 부(富)가 3600억달러나 줄어든 셈이 됐다. 지난해 여름 실업률은 사상 최고치, 가계 월소득 중간값은 95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또 고정환율제 때문에 홍콩달러가 지나치게 고평가돼 경기 회복을 더디게 하고 있을 뿐 아니라 자금 시장의 투기적 공격의 타깃이 되어 왔다.

상하이 등의 부상으로 중국 투자의 관문이라는 지위도 위태로워졌다. FT는 홍콩을 15세기말 아시아 무역 독점력을 상실한 후 쇠락해 버린 이탈리아 베네치아에 비유했다.


▽무능한 정부가 문제=이와 관련해 “문제는 둥 장관 자신의 실정(失政)으로 신뢰를 잃은 것”이라는 비판이 만만치 않다.

홍콩 정책연구소에 따르면 지난해 8월 둥 장관의 정치적 신임도와 정책수행능력 평가가 사상 최저치로 떨어졌다. FT는 “지난해 여름 구성된 새 내각이 몇 달간 한 일이라곤 정책 실패와 이에 대한 사과뿐”이라고 꼬집었다.

홍콩은 낮은 세율, 자유방임주의, 작은 정부라는 특성으로 ‘세계 최고의 자유경제지대’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러나 97년 이후 둥 장관은 적극적인 시장개입을 내세웠다.

97년 둥 장관은 주택 공급 목표를 높게 설정해 부동산 가격을 폭락시켰다. 이후 정부의 토지 매각을 동결하는 등 부동산시장 부양을 위한 조치를 내리기도 했지만 별 효과가 없었다. 정부가 강행한 강제적금(MPF) 정책은 개인소득이 이미 뚝 떨어진 주민들의 생활고를 심화시켰다.

또 홍콩달러의 평가절하 가능성에 대해서도 정부 당국자들이 오락가락하는 등 통화정책이 갈피를 못 잡는 모습을 보여 금융시장을 한층 불안하게 했다는 지적도 있다.

둥 장관이 국민의 투표로 당선된 것이 아니라 중국 정부의 ‘꼭두각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도 불신의 원인이다. 중국이 97년 반환 당시 약속했던 홍콩의 자치와 자율성을 침해하고 있다는 우려 때문에 전반적인 신뢰도가 하락해 소비와 투자 등 경제 활동이 위축되고 있다는 것.

특히 홍콩 정부가 중국의 요청을 받아 ‘체제 전복 활동 금지법’을 7월부터 시행할 방침이어서 우려가 더욱 커지고 있다. 홍콩 재계와 노조, 시민단체 등은 이 법률로 비판적 논평이나 정보의 소통이 억제되고, 결국 홍콩이 국제적인 비즈니스 중심지에 걸맞은 자유를 잃게 될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김승진기자 sarafi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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