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박혜윤/美 저격범주사 TV가 좌지우지

  • 입력 2002년 10월 22일 18시 45분


미국 워싱턴 인근의 연쇄 저격과 관련해 방송뉴스가 경찰 수사와 한데 뒤엉키면서 ‘TV수사’라고 하는 미디어 시대의 단면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고 일간 뉴욕타임스가 21일 보도했다.

수사를 지휘하고 있는 찰스 무스 버지니아주 몽고메리카운티 경찰국장은 21일 수십 개의 카메라 앞에 서서 “사건 현장에 메시지를 남긴 저격범과 접촉을 원한다”고 성명 발표하듯 말했다. 그러면서 기자들에게 “가능한 한 여러 번 방송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자세한 정보를 밝히는 것은 되도록 피했다.

단서가 지극히 부족한 상태에서 경찰은 이날 범인으로 추정되는 사람이 전화를 걸어온 데 대해 잔뜩 기대를 걸고 있는 상황이다. 범인이 자신들과 의사소통을 하고 싶어한다면 대화를 통해 범인의 정보와 물증을 얻어낼 수 있다는 계산 때문이다. 막연히 뭔가에 좌절을 느껴 반발감으로 범행을 결심한 정신질환자일 가능성까지 운위하는 경찰의 답답한 심사로 미뤄 이해 못할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뉴욕타임스는 이번 사건 수사방식을 통해 “9·11테러가 TV의 재난 방송에 신기원을 몰고온 이래 경찰의 수사방식도 TV형으로 변화했다”고 분석했다.

과거 경찰은 증인으로부터 단서를 찾았으나 이제는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24시간 방송되는 케이블 뉴스채널을 통해 제보를 구하는데 익숙해졌다. 시청자들로부터 폭주하는 전화를 받느라 연방수사국은 전화선을 늘리기 바쁘다. 그리고 마침내 TV를 통해 얼굴 모르는 범인과 접촉을 시도하기까지 하게 된 것이다.

TV는 9·11테러 이후 어떤 재난 상황에 대해서도 즉각적이고 상세하며 반복적인 보도를 하게 됐다. 따라서 대중에 흥미뿐만 아니라 공황심리나 연대감까지도 순식간에 전파된다. 타임스의 표현대로 시청자들은 “뉴스를 보는 것이 아니라 뉴스 속에 살고 있는 셈”이다.

이같은 ‘TV수사’에 편승해 거짓 제보자도 나오고 있다. 화면에 얼굴을 내밀고 싶은 심리가 뉴스에까지 침투한 셈이라고 전문가들은 개탄한다.

이 와중에 방송은 관련 전문가를 총동원해 ‘총기 지문’ ‘범죄 심리’ ‘안전수칙’ ‘훌륭한 증인이 되는 법’ 등을 쉴새없이 방송하고 있다.

박혜윤 기자 parkhy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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