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치주 50돌 맞은 옌볜 조선족 下]뒷걸음치는 경제

  • 입력 2002년 8월 30일 18시 36분


옌지 시내의 노래방과 다방들. 중국내에서도 소비성향이 대단히 강한 경제구조를 갖고 있다. - 옌지=황유성특파원
옌지 시내의 노래방과 다방들. 중국내에서도 소비성향이 대단히 강한 경제구조를 갖고 있다. - 옌지=황유성특파원
《“옌볜(延邊) 경제는 여자와 바깥온도에 달렸어요.”

옌지(延吉)에서 만난 한 조선족 기업인(55)은 옌볜 경제를 이렇게 평가했다.

그는 “왕샤오둥(王曉東) 옌볜자치주 부주장(副州長)이 최근 한 모임에서 한국 등에 진출한 조선족 여성들이 매년 송금해오는 돈이 3억달러나 된다고 말한 적이 있다”고 밝혔다.》

지난해 옌볜자치주 1년 재정수입이 17억위안인데 3억달러면 중국돈으로 24억위안이 넘으니 여자를 ‘기둥산업’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라는 것이다.

‘바깥온도’는 옌볜 경제의 대외의존도가 심하다는 뜻이었다. 자체 경제기반보다는 북한과의 변경무역과 한국의 투자 관광수입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것이 옌볜 경제의 특징이라는 것. 하지만 1990년대 중반 북한의 경제파탄으로 변경무역이 거의 몰락한 데다 한국마저 1997년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옌볜 경제도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였다. 그는 “한국이 재채기를 하면 옌볜은 독감에 걸린다”고 말했다.

▽버려진 땅〓“옌볜은 대대로 중앙으로부터 버려진 땅이었습니다. 변경오지의 산악지역(주 면적의 80%)인 데다 중앙의 투자가 거의 이뤄지지 않다 보니 자연을 수탈하는 것밖에 먹고살 것이 없었습니다. 나무를 베거나 이를 원료로 한 제지공업, 약재 채취 외에는 이렇다 할 산업이 없지요.”

옌볜대학의 한 교수(52)는 “자치주에 임업국이 8개나 되는 곳은 옌볜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업이라고 해봐야 삼림 제지 의약 식품 이외에는 탄광 동광(銅鑛) 야금 방직이 고작이라는 설명이었다.

옌볜이 자체적인 발전기반을 갖추지 못한 것은 불리한 입지조건뿐만 아니라 역사적 요인도 있다.

일제강점기 옌볜의 공장은 스셴(石峴)제지공장과 카이산툰(開山屯) 섬유펄프공장 등 2개뿐이었다. 1960년대 중소 분쟁기에 이곳은 전쟁지역이었다. 1978년 개혁 개방 이후에는 동부 연해지역에 경제개발의 중심이 두어졌다. 2000년대 들어 서부대개발을 하지만 옌볜은 서부에도 끼지 못한다는 것. 역사적으로 투자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상대적으로 뒤지는 자치주 경제〓옌볜 경제가 출로를 찾지 못하면서 자치주의 경제성장도 상대적으로 뒷걸음질을 치고 있다.

옌볜통계연감에 따르면 2000년 옌볜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지린(吉林)성 평균보다 1017위안, 전국 평균보다 1248위안이 낮다.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전국 30개 자치주 가운데 옌볜은 1인당 GDP나 경제성장률이 가장 높았으나 이제 6위로 처졌다. “조선족 자치주가 잘 산다는 말은 이제 옛 얘기”라는 게 옌볜 주민들의 말이다.

▽기형적인 소비경제〓“택시와 다방은 옌지가 중국에서 1등입니다. 택시가 3000대이고 다방이 300개 가까이 되니 시민(30만명) 100명당 택시 1대, 1000명당 다방 1개 꼴이지요. 안마시술소 노래방 룸살롱 등도 경제가 발전했다는 광둥(廣東)성에 전혀 뒤지지 않습니다.”

옌지 시민 이성수(李成洙·32)씨의 말이다. 옌볜의 경제구조를 보면 3차산업이 대단히 발전했다. 그러나 금융 무역 유통 관광 등 정상적인 3차산업과는 거리가 멀고 퇴폐향락산업이 집중적으로 발달돼 있다. 한국관광객을 노린 것이기도 하지만 한국 등에서 돈을 벌어온 조선족들이 특별히 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

옌볜자치주의 1인당 소비수준은 1990년 1257위안에서 1999년에는 3304위안으로 3배 가까이 늘었다.

이씨는 “한국에서 2, 3년 벌면 택시를 사고 5, 6년 벌면 다방을 차린다는 말이 있다”며 “배운 게 없고 일자리도 없으니 다른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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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정책 대부분 구호에 그쳐▼

▽백화제방(百花齊放)의 발전전략〓“전략이 많다는 것은 역으로 전략이 없다는 뜻이지요. 옌볜 경제의 특징이 이렇다보니 자치주 서기나 자치주장이 바뀌면 그때마다 새로운 경제발전 전략을 들고 나왔지만 하나도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1980년대 중반 개혁 개방바람이 변방오지에도 불면서 옌볜은 농업이 아닌 공업으로 일어서야 한다는 ‘공업흥주(工業興州)’ 전략이 나왔다. 그러나 외부투자가 전혀 이뤄지지 않자 주정부는 국유기업 근로자들의 월급을 매달 강제 적립해 공장을 건설하는 웃지 못할 일까지 있었다고 한다.

유엔개발계획(UNDP)의 두만강개발계획이 발표됐던 90년대 초반에는 국제무역으로 먹고살아야 한다는 ‘출해창회(出海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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