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삼성, 위기대처 소니 앞섰다

  • 입력 2002년 5월 14일 18시 47분


《요즘 세계 경제의 ‘화두’는 단연 한국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삼성전자의 눈부신 성장은 뉴욕타임스나 파이낸셜타임스 등 해외 언론에서 자주 언급되고 있다. 반면 ‘지지 않는 해’로 군림해 온 일본의 대표적 기업 소니는 ‘삼성전자에 추월당한다’는 뼈아픈 지적을 듣고 있다. 하지만 정작 양사는 연간 거래규모 1조원에 육박하는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두 나라를 대표하는 양사의 유사점과 차이점을 통해 경쟁과 협력의 현주소를 알아본다.》

요즘 소니 직원들은 삼성 얘기가 나올 때마다 심기가 불편하다. 그 많은 일본기업 중 왜 하필이면 소니와 비교하느냐며 아예 언급을 회피하기도 한다.

그러나 삼성의 지난해 순이익은 2조9649억원. 소니(153억엔·약 1500억원)의 20배 가까운 엄청난 규모인 만큼 삼성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분위기다. 실제로 이데이 노부유키(出井伸之) 소니 회장이 주재하는 경영회의에서는 삼성의 수익구조를 놓고 사업전략을 논의하는 일이 잦아졌다.

당사자인 삼성도 주요 거래처인 소니를 자극하지 않으려 애쓰는 흔적이 역력하다. 지난해말 삼성의 북미총괄책임자가 소니코리아 사장으로 스카우트됐을 때나 소니가 대주주인 컬럼비아사가 영화 ‘스파이더맨’의 배경에 나오는 삼성광고판을 삭제했을 때도 조용히 넘어갔다. 삼성의 한 임원은 “소니와 삼성은 경쟁관계라기보다는 협력관계”라고 강조한다.

양사가 서로 거래를 하기 시작한 것은 불과 3, 4년 전. 소니가 게임기 플레이스테이션을 개발하면서 삼성에 반도체를 만들어달라고 주문한 것이 계기가 됐다. 지난해 8월에는 양사가 AV분야에서 제휴하기도 했다. 현재 삼성은 소니에 반도체를, 소니는 삼성에 CD기술을 제공, 연간 거래규모가 1조엔에 이르고 있다.

소니는 56년의 짧은 역사로 세계적인 브랜드 가치를 보유하고 있는 독특한 기업. ‘스피드경영’ ‘책임경영’ 등 삼성의 주요 경영 키워드는 이미 소니가 한발 앞서 실험한 것이다. 또 유능한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 학벌을 묻지 않고 ‘중도 채용’을 늘리는 등 파격적인 인사제도로도 유명하다.

그러다 보니 후발주자격인 삼성이 지금 소니에 필적하게 된 비결에 관심이 쏠린다. 일부에선 위기대응 능력을 꼽기도 한다. 삼성이 외환위기를 계기로 과감한 구조조정과 투자를 한 반면 소니는 불황을 이유로 투자를 소홀히 했다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소니 관계자는 “소니는 아직도 끊임없이 창조적 발상을 시도하는 젊은 기업”이라며 “워크맨과 같은 대형 히트상품이 나온다면 한 단계 더 높은 성장을 거두게 될 것”이라고 반박한다.

후카가와 유키코(深川由紀子) 아오야마가쿠인대학 교수는 “양사는 10여년 전부터 각자 다른 길을 걸어왔다”고 분석한다. 삼성은 D램반도체 등 범용상품에 대한 대규모투자, 대량생산으로 세계시장 장악에 주력한 반면 소니는 한국 등의 추격을 받는 범용상품을 포기하고 ‘독창적인 상품’ 개발에 힘을 쏟아왔다는 것. 삼성의 반도체와 휴대전화, 소니의 노트북PC 바이오와 플레이스테이션이 바로 그것. 때문에 삼성과 소니 스스로도 ‘하드웨어의 삼성’ ‘소프트웨어의 소니’라고 표현한다. 이는 양사의 경영모토인 ‘삼성-디지털 컨버전스(디지털제품간 융합)’ ‘소니-디지털 드림’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비슷하면서도 다르고, 다르면서도 비슷한 양사의 경쟁과 협력관계는 한일 경제사의 어제와 오늘을 함축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소니가 보는 삼성의 강점▼

소니가 삼성의 강점으로 꼽는 것은 균형잡힌 사업구조 및 강력한 리더십과 과감한 투자.

소니 관계자는 삼성에 대해 “반도체를 비롯해 액정 통신 디지털 가전 등을 골고루 갖추고 있어 어느 한 쪽이 부진해도 별 타격을 받지않는안정적인 수익구조라는 데 주목하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은 한때 반도체 의존도가 높았으나 지금은 휴대전화 등 정보통신 부문이나 디지털미디어 부문도 효자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지난해 삼성의 부문별 영업이익을 봐도 △정보통신 1조3741억원 △반도체 6984억원 △디지털미디어 2928억원 △생활가전 1829억원 등으로 사업전반에서 고루 수익을 냈다.

소니가 더욱 높게 평가하는 것은 오너를 중심으로 한 강력한 리더십. 소니는 창업주인 모리타 아키오(森田昭夫)가 94년 명예회장으로 물러난 이후 줄곧 전문경영인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사업부문별 책임경영을 실시하고 있기는 하지만 ‘하의상달(下意上達)’을 중시하는 일본기업 특성상 ‘밀어붙이기식 결단’이 쉽지 않다. 과거 삼성이 사운을 걸고 반도체사업에 대규모 투자를 감행했던 것도 오너만이 내릴 수 있는 결단이라는 것. “그러나 모든 오너가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니다”라고 이 관계자는 덧붙였다.

▼삼성이 보는 소니의 강점▼

삼성은 소니의 창의력과 소프트웨어부문의 경쟁력을 최고의 강점으로 꼽는다. 모리타 회장이 강조해온 ‘세계에 없는 제품을 만든다’는 창업정신이 아직도 남아있어 워크맨에 이어 CD플레이어, 플레이스테이션1, 2 등 창의적인 제품을 속속 만들어 내온 것.

삼성 관계자는 “소니는 사내조직이 자유분방하고 독창성을 키워주는 분위기인 데다 항상 위기감을 갖고 새로운 것을 찾는다”라고 평가한다. 10개 중 9개가 실패해도 한가지만 히트하면 대성공이라는 도전정신은 요즘의 벤처정신과도 상통한다는 것.

또 소니가 엔터테인먼트 등 소프트웨어 부문에 주력하는 것도 삼성으로서는 강점으로 인식하고 있다. 소니는 90년대 이후 AV사업에서 게임기 영화 등 엔터테인먼트 쪽으로 사업의 비중을 완전히 옮겼다. 지난해 영업이익 1346억엔 중 정보통신 제품은 82억엔의 적자로 돌아선 반면 게임기 플레이스테이션2는 1800만대나 팔려 829억엔의 이익을, 영화부문에서는 310억엔의 이익을 올려 소프트업계 강자로 올라섰다. 과거 삼성영상사업단이 영화사업에손을 댔다가 포기한 경험이 있는 삼성으로서는 컬럼비아사를 비롯해 엔터테인먼트 사업에서 성공을 거두고 있는 소니가 연구대상이다.

이영이기자 yes20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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