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국민 "정치적 지진" 경악

  • 입력 2002년 4월 22일 16시 31분


'믿을 수가 없어...'
'믿을 수가 없어...'
《21일 실시된 프랑스 대선 1차투표에서 극우파인 장마리 르펜 국민전선(FN) 당수가 우파인 자크 시라크 대통령에 이어 2위를 차지해 2차 결선투표에 진출하는 이변이 연출됐다. 프랑스 대선에서 극우파 후보가 결선에 진출하기는 처음으로 프랑스 정치의 우경화(右傾化) 실체가 공개적으로 그 모습을 드러냈다. 당초 시라크 대통령과 리오넬 조스팽 총리가 1차투표 1, 2위를 대상으로 실시하는 결선투표에 진출할 것이란 대다수 관측에 찬물을 끼얹은 가운데 프랑스 언론들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프랑스 정치사에서 최대의 사건” “프랑스 민주주의의 위기”라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 조스팽 총리는 21일 출구조사 발표 직후 “5월 대통령 결선투표를 치르고 총리직에서 물러난 뒤 정계를 은퇴하겠다”고 선언했다. 21일과 22일 프랑스 전역에서는 수만명이 ‘르펜 파쇼’ ‘파시즘 타도’ 등을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조스팽 “결선투표 끝난후 정계은퇴”▼

▽충격적인 1차투표〓5월5일의 결선투표에서는 시라크 대통령이 압도적인 지지(78% 대 22%)로 르펜 당수를 이길 것으로 여론조사가 나오고 있지만 이른바 ‘자유’ ‘평등’ ‘박애’를 국가 이념으로 삼고 있는 나라에서 극우 인종차별주의자가 결선투표에 나가는 데 따른 충격파는 크다.

좌파의 대표주자였던 사회당은 69년 이후 30여년 만에 처음으로 결선투표에 후보를 내지 못하게 됐으며 30년간 이어져온 좌우파 결선 구도가 붕괴됐다.

프랑스 내무부는 22일 국내 투표분 개표 완료 결과 시라크 대통령이 19.67%, 르펜 당수가 17.02%의 득표율로 각각 1, 2위를 차지했으며 조스팽 총리는 16.07%를 얻는 데 그쳤다고 발표했다.

르펜 당수는 “노력과 인내, 신의 도움으로 모든 장애물을 넘었다”고 소감을 밝혔으며 시라크 대통령은 “공화국의 가치가 위기에 처했다”며 결선투표에서 자신을 지지해달라고 호소했다.

▼르펜 ‘이민반대-사형부활공약’주효▼

▽왜 르펜인가〓이달 초 10% 안팎이었던 르펜 당수의 1차투표 지지율은 13일을 전후해 13∼14%로 뛰어올랐으나 19일 마지막 여론조사 결과는 14% 정도였다.

18%였던 조스팽 총리를 이틀 만에 뛰어넘기는 어려운 격차가 있었던 그가 17%가 넘는 득표율을 기록한 것은 마지막까지 40%에 이르던 부동층이 움직인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95년 대선구도의 재판(再版)인 시라크 대통령과 조스팽 총리의 양자 대결구도에 대한 식상과 두 사람의 정견차 부재(不在), 시라크 대통령의 부패 의혹과 조스팽 총리의 전력(前歷) 거짓말 등에 대한 불만이 부동층의 형성으로 표출된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다 경기침체와 9·11테러, 국내 범죄율 증가에 따른 유권자의 불안심리를 극우파인 르펜 당수가 교묘하게 파고들었고 이번 대선의 가장 큰 쟁점인 치안문제에서 르펜 당수가 이민 반대와 사형제 부활 등 강경한 공약을 내세운 것이 주효했다는 것.

▼좌파 위기…6월 총선 설욕 여부 주목▼

▽프랑스 좌파의 위기?〓조스팽 총리의 사회당 참패는 물론 르펜 당수와 3위 다툼을 벌일 것으로 예상됐던 극좌파의 아를레트 라기예 노동자투쟁당 후보도 6% 정도의 지지율을 얻는 데 그쳤다.

선거 때마다 5% 이상의 지지율을 유지했던 공산당의 로베르 위 후보도 3.5%선에 그치는 등 좌파의 부진이 두드러졌다. 르펜 당수는 결선 진출 소감에서 “무엇보다 공산당이 문을 닫게 돼 기쁘다”고 독설을 퍼부었다.

대선에 이어 치러질 6월 총선에서 프랑스 좌파가 결집해 설욕전을 벌일 수 있을지 여부에 프랑스 좌파의 운명이 달려 있다.90년대 후반 좌파 일색이었던 서유럽의 집권세력은 2000년부터 오스트리아 스페인 이탈리아 노르웨이 덴마크 포르투갈에 이어 이번에 프랑스까지 우파 득세로 이어지면서 더욱 거센 우파 바람을 타게 됐다.

박제균기자 ph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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