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정상회담 의미 퇴색…아라파트 등 3분의1불참

  • 입력 2002년 3월 27일 18시 04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간의 유혈사태에 대한 해법을 논의할 아랍정상회담이 27일 레바논의 베이루트에서 개막됐다. 그러나 주인공이랄 수 있는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을 비롯해 아랍권의 맹주를 자처하고 있는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 등 아랍연맹 22개국 회원국 정상 가운데 3분의 1가량이 불참해 반쪽 짜리 회담으로 전락했다. 이에 따라 사우디아라비아가 제안한 새로운 중동평화안도 추진력을 잃게 될 것으로 보인다.

▽아랍권의 분열〓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개막 하루 전인 26일 성명을 통해 “아라파트 수반은 협박과 이스라엘의 조건부 귀환 위협에 굴하지 않기 위해 베이루트에 가지 않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이에 앞서 아리엘 샤론 이스라엘 총리는 아라파트 수반이 회담에 참석하기 위해서는 이슬람 무장단체에 대해 테러행위를 중단하라고 지시해야 하며 회담 기간 중 테러가 발생하면 그의 팔레스타인 귀환을 막을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다. 아라파트 수반의 불참 선언에 이어 무바라크 대통령과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 압둘라 2세 요르단 국왕 등 아랍권의 주요 국가들도 잇따라 불참을 선언했다.

무바라크 대통령은 국내 사정을 이유로 불참을 선언했지만 사실은 아랍권 내 경쟁국인 사우디아라비아가 새 평화안을 제창하고 미국이 이를 지지한 데 대해 속이 상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동평화의 핵심적 중재자였던 자신을 제치고 압둘라 빈 압둘 아지즈 사우디 왕세자가 주도하는 회담에 참석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란 관측이다. 아랍권은 결국 이번 회담에서 단합하기는커녕 고질적인 분열상을 다시 한번 드러낸 셈이다.

▽빛 잃은 중동 평화안〓뉴욕타임스는 26일 “아라파트 수반의 불참으로 베이루트 회담의 의미가 크게 퇴색했으며 사우디아라비아가 내놓은 새 중동평화안의 실현 전망도 요원해졌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또 이번 일로 팔레스타인 내에서 아라파트 수반의 위치는 격상된 반면 샤론 총리는 중동평화 중재 활동을 재개하고 아라파트 수반의 회담 참석을 허용하라고 요구했던 미국을 정면으로 무시한 것으로 비쳐지게 됐다고 분석했다.

김성규기자 kim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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