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종하 前외무 '악의 축' 관련 인터뷰 "北 한국으로 기울것"

  • 입력 2002년 2월 16일 18시 27분


유종하(柳宗夏·전 외무부장관)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16일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악의 축’ 발언과 관련, “미국의 대북 강경책이 우리의 대북정책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밝히고 “아버지가 매를 들면 아이는 어머니 쪽에 도움을 청하게 되는 것이 본능”이라며 “미국이 (북한을 향해) ‘큰 채찍’을 잡으면 북한은 더욱 한국 쪽으로 기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음은 문답 요지.

-‘악의 축’ 발언 이후 정부와 여당의 대응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정부는 미국측과 회담을 하고 돌아오는 한승수(韓昇洙) 외교통상부장관을 경질함으로써 미국에 불만을 표했다. 여당은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미국 공화당이야말로 과거 한국의 독재정권을 밀어준 원흉이 아니냐’며 반미 감정을 부추기는 방향으로 끌고 가고 있다. 이런 반응이 국제사정과 국익에 맞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미국의 대북강경책과 우리의 햇볕정책이 조화될 수 있는가.

“남북간의 긴장완화 교류증진 및 통일을 위한 대화는 한국의 몫이고 대량살상무기를 비롯한 범세계적인 안보문제 해결은 미국의 과제라는 것은 한미간에 오래 전에 합의된 것이다. 이런 역할 분담의 성격상 미국은 강경하고, 한국은 온건한 정책을 취하는 것이 불가피하고 그것이 정석이다.”

-‘9·11테러’ 이후에도 역할분담론은 유효한가.

“그렇다. 문제는 우리가 ‘햇볕정책’이란 ‘큰 당근’으로 대북교섭을 벌인다고 해서 9·11테러 이후 미국의 ‘큰 채찍’ 정책에 반대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또 그렇게 하는 것이 우리 국익에 도움이 되느냐는 것이다.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공격한다면 남북간 대화를 어렵게 하고 한반도 안보상황을 위태롭게 한다는 점이 우리가 (미국측에) 반대할 수 있는 명분이다.”

-미국의 대북강경책에 군사적 공격도 포함된다고 보는가.

“북한은 미국과 맞설 경우 생존의 길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북한은 매우 현실주의적이고 외교기량도 높아 이렇게 위급한 상황에서도 무엇인가 얻고 대미협상을 타결로 이끌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큰 채찍도 (대북) 협상용인 측면이 강하다. 북한에 협상 제의를 해놓은 상태에서 채찍을 든 것이다. 주한미군이 3만7000명이나 있는 상황에서 한국이 반대하는 전쟁을 미국이 시작할 리 없다.”

-한미간 대북공조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정부는 아이(북한)가 나쁜 짓을 할 때 아이를 옹호하는 것이 아이를 돕는 것인가 생각해 봐야 한다. 북한은 아직도 북-미관계 개선을 남북관계 개선보다 앞세우고 있다. 그것은 체제유지를 위한 것이다. 한국이 미국과 공조를 하지 않고 북한에 추파를 보내면 한국의 대북협상력은 무너진다. 우리 외교의 정석은 미국과 북한의 가운데 서 있는 것이 아니라 미국과 한 팀이 되어 북한을 대하는 것이다.”

-미국의 반테러 세계전략 속에서 햇볕정책의 진로는….

“햇볕정책도 새로운 국제현실에 맞춰야 한다. 북한이 군사력을 계속 증강하고 미사일을 개발하는 한 북한의 군사력을 도와주는 현금 원조는 중단해야 한다. 우리 돈으로 북한의 군사력을 키워 한미공동방위부담을 늘리고 국제안보를 해치는 일을 도와준다면,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고 미국의 신뢰를 크게 떨어뜨릴 것이다.”

부형권기자 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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