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론, 후폭풍 4]기부금에 입막고… 주식에 눈감고…

  • 입력 2002년 2월 5일 18시 02분


엔론사태를 계기로 기업의 사외이사제도를 근본적으로 개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경영진에 대한 감시와 견제를 통해 기업경영의 투명성을 확보해야 할 사외이사들이 회사로부터 금전적인 지원을 받거나 경영에 깊숙이 관여해온 것으로 속속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엔론의 사외이사 14명 중 대다수는 엔론의 기부금을 받은 단체에 속해있거나 엔론의 컨설턴트로 활동하고 있는 인물들로 밝혀졌다.

▼연재기사목록▼
- ① 의심받는 대기업 회계
- ② 종업원 연금제도 흔들
- ③ 월가의 교묘한 금융거래
- ④ 역할 못한 사외이사제
- ⑤ 지식인들 왜 입닫았나

암센터로 유명한 텍사스대학 MD 앤더슨병원의 존 멘델손 원장. 그가 99년부터 엔론의 사외이사로 활동하는 동안 앤더슨병원은 엔론으로부터 33만달러의 기부금을 받았다. 텍사스대 법과대학도 지난해 초 엔론으로부터 25만달러를 지원받았다. 이 대학이 엔론으로부터 거액의 기부금을 받은 것은 윌리엄 파워스 학장이 엔론 이사에 선임된 것과 때를 같이한다.

엔론의 사외이사에는 영국 상원의원으로 에너지부 장관을 지낸 존 웨이크햄도 포함돼 있다. 그는 7만2000달러의 보수를 받고 엔론의 유럽사업 고문으로 활동해 왔다.

이들은 한결같이 경영진의 은폐로 인해 회계조작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엔론 이사회는 임원진이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회사의 직책을 맡지 못하도록 명시한 기업윤리 규정을 무시하고 99년 두 차례나 엔론의 최고재무책임자(CFO)가 ‘LJM’이라는 개인회사를 운영할 수 있도록 허용한 것으로 밝혀졌다.

LJM은 엔론이 부채를 교묘히 빼돌리기 위해 세운 합자회사로 현재 의회 등이 벌이고 있는 엔론 불법회계 조사의 핵심이 되고 있다. 엔론 이사진은 또 지난해 엔론과 LJM 사이의 거래에 대한 감사를 벌이고도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않아 회계조작을 ‘공모’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대다수 대기업에서 사외이사들은 경영진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침묵으로 일관하는 것이 일종의 미덕으로 여겨져 왔다. 3개 대기업의 사외이사직을 맡고 있는 한 경영인은 “일정이 바쁜 사외이사들은 토론을 삼가고 되도록 빨리 이사회를 끝내려고 한다”면서 “회계장부에 대해 질문을 늘어놓는 것은 결코 환영받지 못할 일”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엔론사태로 분위기는 많이 달라졌다.

전미기업이사협회(NACD)의 로저 라버 사장은 “사외이사들 사이에 ‘묻고 묻고 또 물어라’는 유행어까지 등장했다”면서 “기업들도 과거와는 달리 여러 기업의 사외이사를 맡고 있는 인물을 이사로 선임하는 것을 피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미경기자 mi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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