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식 경영' 장기불황에 휘청

  • 입력 2002년 1월 20일 18시 15분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세계에서 가장 효율적이라는 평가를 받아온 ‘일본형 기업 시스템’이 무너지고 있다. 일본형 시스템의 핵심은 강력한 오너를 중심으로 종신고용과 연공서열에 바탕을 둔 가족형 경영 및 대량생산 체제로 일본을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일궈낸 원동력이었다. 그러나 장기 불황이 계속되면서 일본 기업들은 일본형 시스템을 부정하고 미국식 경영방식을 도입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외환위기를 계기로 미국식 시스템을 받아들이고 과감한 구조조정을 단행한 한국을 배우자는 주장까지 나온다.》

▽미국식 기업지배 제도 도입〓일본 법무성은 ‘사외이사제’ 도입 등 기업경영 감시기능을 강화하는 상법 개정안을 마련해 21일 열리는 정기국회에 제출한다. 일본 기업은 그동안 이사회와 감사역이 경영감시를 해왔으나 오너로부터 월급을 받는 감사나 사내이사가 제 기능을 못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개정안에 따르면 자본금 5억엔 이상이나 부채총액 200억엔 이상인 기업(약 1만개 사)은 반드시 사외이사를 채용토록 했다. 다만 재계의 반발을 감안해 사외이사제도를 도입하는 기업은 집행 임원의 권한도 강화하는 등 유인책도 함께 내놓았다. 사외이사는 대표적인 미국식 기업지배 제도로, 한국은 외환위기 직후 이 제도를 도입했으나 일본 기업은 의사결정을 신속하게 못한다는 등의 이유로 반대해 왔다.

▽마쓰시타 창업정신 포기?〓일본식 경영 시스템은 1918년 마쓰시타전기를 세운 마쓰시타 고노스케(松下幸之助)의 창업 정신에서 비롯됐다. 수도꼭지만 틀면 물이 나오는 것처럼 전 가정에 값싸게 전기제품을 보급한다는 ‘수도철학’이 요체. 이를 위해 사업부제와 종신고용제가 고안됐다. 상품별로 개발 생산 판매를 책임지게 하는 사업부제는 모든 일본 기업에 퍼졌고 일부 서구기업도 이를 도입했다. 또 창업주 마쓰시타는 “종업원은 가족”이라며 노사 일체에 바탕을 둔 생산성 향상을 강조했다. 지난해 초 일본에 인원감축 바람이 불었을 때도 마쓰시타는 “미국식 대량해고는 없다”며 창업정신을 고수했다.

그러나 경영실적이 계속 악화되면서 마쓰시타는 지난해 말 사업부제와 종신고용 포기를 선언했다. 사업부별로 분산된 개발 생산 판매 조직을 일원화해 경영 효율을 꾀하고, 희망퇴직 등 인원 정리에 착수했다.

▽‘일본식 순혈주의’ 탈피〓세계 4위 자동차업체인 도요타는 ‘순혈주의’로 대표되는 기업. 독일 다임러벤츠와 미국 크라이슬러의 합병 등 세계 자동차업체의 합종연횡 속에서도 도요타는 독자노선을 걸어왔다.

그러나 도요타는 최근 순혈주의를 버리고 미국 포드자동차와 판매 연구 등의 분야에서 다양한 협력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일본 대기업 중 가장 먼저 외국계 자본을 끌어들여 구조조정에 성공한 사례는 닛산자동차. 심각한 경영악화를 겪던 닛산은 99년 프랑스 르노와 자본제휴를 맺고 르노 출신의 카를로스 공 사장을 영입해 대량감원과 하청업체 정리 등을 통한 서구식 비용절감으로 지난해 사상최고 흑자를 기록했다. 이어 미쓰비시자동차도 다임러크라이슬러와의 자본제휴를 통해 외국인 부사장을 영입한 것을 비롯해 자동차 제약 금융 통신 등의 분야에서 외국세 진출이 두드러지고 있다.

도쿄〓이영이특파원 yes20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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