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레반 “안전 보장된다면 항복”…쿤두즈서 '조건부 투항' 제의

  • 입력 2001년 11월 19일 18시 24분


탈레반 전투기 잔해
탈레반 전투기 잔해
그들은 기도하는 듯한 자세로 숨져 있었다. 40명 모두 무릎을 꿇은 상태. 탄환 1발씩이 그들의 몸을 관통한 흔적이 있었다.

격전이 계속되고 있는 아프가니스탄 북부 쿤두즈 인근의 작은 마을 다시트이아르치. 지난주말 이 마을에 진격한 북부동맹의 한 사령관은 탈레반을 도우려 참전한 체첸 출신 외국인 자원병들의 집단 자살 현장을 이렇게 목격했다고 전했다.

그의 목격담에 따르면 북부동맹군이 진격했을 때는 집단자살이 막바지에 달한 순간이었다. 탱크 운전병이 다가가자 마지막 총성이 울렸다. 아직 살아있던 탈레반 병사가 기도중인 마지막 남은 자원병에게 총격을 가한 것. 그 순간 북부동맹군의 사격으로 탈레반 병사도 쓰러졌다. ‘투항 대신 집단 자살’을 택한 것이다.

개전이래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북부 도시 쿤두즈에 고립된 탈레반 병사들과 오사마 빈 라덴을 신봉해 국경을 넘어온 외국인 자원병들, 즉 이른바 ‘이슬람전사들(무자헤딘)’이 기울어가는 전세 앞에서 극단적 선택으로 치닫고 있다.

쿤두즈를 탈출한 주민들은 “외국인 자원병들이 원주민 통역사를 끌고 다니며 확성기로 ‘우리가 선봉에 서서 죽음으로 저항하겠다’고 외치고 있다”고 시내 분위기를 전했다. 이들은 잡히면 북부동맹에 의해 처형될 것이라는 판단에서 항복을 결사 반대하고 있다는 것.

탈출한 주민 압둘 라투르(50)는 “현재 최전방에서 싸우는 병사들은 대부분 파키스탄 등에서 온 외국인 자원병들”이라고 전했다. 심지어 이미 대세가 기울었다고 판단한 체첸 출신 병사 60여명이 강(江)에 투신 자살했다는 목격담도 나오고 있다.

현재 쿤두즈에는 체첸, 파키스탄 및 아랍 등지에서 온 6000여명의 외국인 자원병들이 있는 것으로 북부동맹측은 추정하고 있다. 탈레반이 카불을 포함해 주요 도시들을 맥없이 내 준 것과 대조적으로 쿤두즈에서 격렬히 저항하고 있는 것은 이곳 탈레반 전력의 핵심이 외국인 자원병들이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투항 여부를 놓고 탈레반 병사들과 무자헤딘들간의 갈등도 깊어지고 있다.

메드 이브라힘(50)이라는 주민은 “아랍인인 알 카에다 조직원들이 항복하려는 아프가니스탄인 탈레반 병사 150여명을 죽였다”고 전했다. 쿤두즈의 탈레반측이 19일 “비(非) 아프가니스탄 병사들을 죽이지 않는다고 약속하면 항복하겠다”고 조건부 항복 제의를 한 것도 이런 상황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이기홍기자>sechep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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