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외교전선 지각 변동…9·11 테러후 정책변화 가속

  • 입력 2001년 11월 17일 00시 03분


《9·11 테러 참사와 뒤이은 대(對) 테러전쟁으로 미국 외교의 틀이 바뀌고 있다.

전통적으로 국제사회를 나누는 단층선은 동양과 서양, 민주주의 진영과 공산주의 진영 사이에 존재했지만 이제는 경제적으로 ‘성공한 나라들’과 ‘실패한 나라들’ 사이에 존재하고 있다.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화는 ‘성공한 나라들’을 더욱 부강하게 했지만 그렇지 못한 나라들과의 갈등의 골도 더 깊게 만들었다. 미국과 서방사회를 겨냥해 계속되고 있는 테러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달라진 미국의 외교전선은 어디에서 어떻게 형성되고 있으며 이에 대한 미국의 대응은 무엇인지를 크게 3가지로 나눠 정리해 본다.》

▼1. 다변주의로 선회▼

미국 외교전선의 변화는 러시아와 아프가니스탄에서 먼저 나타나고 있다.10년 전만 해도 미국의 관심은 러시아의 핵미사일 위협에 쏠려 있었고 아프가니스탄은 미국인들의 관심권 밖에 있는 국가였다. 그러나 이제 아프가니스탄은 테러리즘의 본거지이자 탈냉전 이후 세계의 안보를 관리할 미국의 힘과 역량을 시험받는 곳으로 부상했다. 취임 초기 ‘일방주의’란 비난을 감수하며 미사일방어(MD)체제 구축, 유엔기후협약 비준 거부 등을 밀고 나갔던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대 테러 전쟁에서의 승리를 위해 관련국들과의 동맹과 연대를 강조하는 쪽으로 선회했다. 이른바 ‘멀티래터럴리즘(다변주의)’ 외교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는 15일 “미국이 아프간 접경국인 러시아로부터 테러전쟁에 대한 협조를 얻기 위해 탄도탄요격미사일(ABM) 협정 조율에 실패하면서까지 핵무기 감축이라는 러시아의 요구를 들어준 것은 매우 놀라운 정책 변화”라고 지적했다. 이 신문은 이를 ‘적의 적은 친구’라는 오랜 외교적 금언이 적용된 예라고 덧붙였다. 미국은 파키스탄 이란 우즈베키스탄 등 과거엔 반드시 우호국이라고 볼 수 없었던 국가들에 대해서도 이 같은 ‘구애’(求愛)를 계속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미국의 구애를 일시적인 것으로 보기도 한다. 테러 전쟁에서 이기기만 하면 유일 초강대국으로서 원래의 일방주의로 회귀할 것이라는 얘기다.

▼2. 중앙아시아 거점 확보▼

유라시아가 미국 외교의 새로운 전략거점이 되고 있다. 미국은 대 아프간 전쟁을 기화로 이 지역에 대한 영향력을 급속히 확대하고 있다. 아프간 인접국인 타지키스탄을 군사적 발진기지로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은 단적인 예다. 테러 전쟁이란 명분 아래 러시아와 중국의 뒷마당에 내려앉은 셈이다.

러시아와 중국으로선 여간 신경쓰이는 일이 아니다.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지는 15일 전쟁이 장기화되고 미군이 오래 머물게 되면 이 지역을 자신들의 영향력 아래 두고 싶어하는 중국과 러시아를 자극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특히 체첸과 그루지야는 카스피해의 석유를 유럽으로 보낼 때 송유관이 지나가게 될 지역이다. 러시아로선 이들 두 나라에 대한 영향력을 결코 잃어버려서는 안 될 상황이다. 러시아가 세계의 이목이 아프간에 집중돼 있는 틈을 타 체첸에 대한 군사작전을 강화하고, 이를 위해 체첸 인접국인 그루지야에도 군사적 기반을 남겨두려는 것은 이 때문이다.

중국은 미국의 대 아프간 전쟁이 신장 위구르 자치지구의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을 진정시키고 선무하는 효과가 있다고 보고 있다. 따라서 미군의 움직임에 대해 아직은 이렇다할 반대의 목소리를 내지는 않고 있다. 그러나 미군의 주둔이 장기화될 경우 불안감도 비례해서 커질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3. '불량국가'와의 관계▼

냉전 종식 후 ‘미국의 지배에 의한 세계 평화’(팍스아메리카)는 무리 없이 달성되는 것처럼 보였다. 구 소련 붕괴 후 10년간의 국제질서 변화는 그러한 방향으로 가기 위한 조정과 진통처럼 보였다.

그러나그앞을이른바‘불량국가들’(rouge states)이 가로막고 있다. 대 아프간 전쟁도 크게 보면 ‘불량국가’와의 전쟁이다. 미국이 아프간에 이어 오사마 빈 라덴과 알 카에다의 전략 거점으로 알려진 이라크 소말리아 수단 등에 대한 제재로까지 전선을 넓혀갈 것인지가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팍스아메리카나는 중동의 전통적인 우호국들에서도 용인받지 못하고 있다.

9·11 테러를 계기로 미국의 가장 강력한 동맹국이었던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집트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은 크게 축소됐다. 오사마 빈 라덴의 출생지인 사우디아라비아에선 재정적자로 인한 경제위기설로 정부에 대한 지지도가 크게 떨어지고 있으며 이슬람 과격주의자들의 세력이 급속히 확대되고 있다.

이집트에서도 친미주의는 자취를 감추고 있으며 무바라크 정권에 대해선 미국과 일정한 거리를 두라는 압력이 거세지고 있다.

향후 국제질서의 안정과 평화는 미국이 중동문제와 ‘불량국가들’의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가느냐에 달려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한결 같은 지적이다.

<정미경기자>mi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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