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꽁치분쟁/수산외교 문제점]졸속 어업협정… '쌍끌이'등 뒤통수

  • 입력 2001년 10월 12일 18시 32분


‘꽁치분쟁’ 과정에서 해양수산부와 외교통상부가 보여준 미숙한 대응은 한국정부에 ‘수산외교’에 대한 최소한의 전문성과 능력이 있는지를 의심케 했다. 99년 ‘쌍끌이 파동’에서 혹독한 경험을 하면서 정부측은 ‘다시는 이런 실수를 저지르지 않겠다’고 다짐했으나 제대로 나아진 것은 거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꽁치분쟁’ 정부대처 낙제점〓해양부는 러-일 양국이 남쿠릴열도 주변 수역에서의 제3국 조업 금지쪽으로 의견을 모아간다는 낌새를 이미 한달 전에 눈치챘는데도 ‘안일한 대응’으로 일관해 ‘뒤통수’를 맞았다.

해양부측은 12일까지도 “러-일 두 나라가 한국어선의 남쿠릴 조업금지에 완전히 합의하지는 않은 상태”라고 말해 협상흐름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또 이에 대한 일본언론 보도가 처음 나온 7일 해양부와 외교부는 “일요일이라 러시아와 일본에 확인이 안 된다”는 말만 되풀이해 수산외교 채널이 가동되는지에 대한 의문을 낳게 했다. 유삼남(柳三男) 해양부장관은 업무파악도 제대로 안된 상태에서 이번 사태를 맞았다. 또 홍승용(洪承湧) 차관은 2일부터 11일까지 중남미출장으로 자리를 비우는 등 해양부측은 사태의 심각성에 대한 인식조차 모자랐다는 지적을 받는다.

▽첫단추부터 잘못 끼웠던 한일어업협상〓어업문제를 둘러싼 한일간 불신의 골은 깊으며 이 과정에서 한국은 번번이 일본에 당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일관계 전문가들은 98년 9월 타결된 한일간 새 어업협정부터 문제가 많았다고 지적한다.

당시 한국정부는 같은 해 10월로 예정된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방일을 앞두고 ‘한일 신(新)관계’를 부각시키기 위해 충분한 내용검토 없이 협상타결에만 연연하는 모습을 보였고 일본측은 이를 충분히 이용했다.

졸속으로 이뤄진 한일어업협상에 내재된 문제점은 99년 3월 이른바 ‘쌍끌이 조업 파동’으로 폭발돼 큰 사회적 문제가 됐다. 해양부는 그때도 늑장대응으로 일관해 많은 비판을 받았다.이 문제는 결국 한일간 추가협상을 거쳐 가까스로 봉합됐고 김선길(金善吉) 당시 장관을 비롯해 관련 공무원들이 줄줄이 옷을 벗었다.

일본의 배타적 경제수역(EEZ) 경계문제를 둘러싼 두 나라간 갈등도 이어졌다. 일본은 한국과의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이른바 ‘신(新)영해’ 안에서 조업하던 한국어선을 자주 나포했다.

그러나 현정부 출범 후 한국측은 가급적 일본과의 외교적 마찰을 줄이는 데만 급급해 일본측의 ‘강수(强手)’에 대해 방어적인 태도를 자주 취했다. 정부는 우리 어선의 남쿠릴 및 산리쿠 수역 조업이 어려울 경우 일본에 ‘보복조치’를 취할지에 대한 뚜렷한 방침도 세워두지 못했다. 물론 강경대응만이 능사는 아니지만 국가와 국가간 관계에서 표면상의 화해에 의식해 지나친 저자세 외교를 펴는 것은 문제라는 지적이다.

▽러-일 합의발표 왜 미루나〓러시아와 일본 어느 쪽으로부터 남쿠릴수역에서의 제3국 조업을 금지시키기로 합의했다는 공식발표는 아직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우리 정부 당국자조차 “사실상 양국간의 물밑 합의가 이루어진 것으로 봐도 될 것 같다”고 털어놓았다.

러-일이 발표시기를 20일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때로 미룬 것은 15일로 예정된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의 방한을 염두에 둔 것으로 풀이된다.

<권순활·김동원기자>davi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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