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자헤딘 출신 아프간 기업인 라티브 인터뷰

  • 입력 2001년 10월 3일 18시 56분


“9월22일 아프가니스탄 기업인 대표로 칸다하르에서 탈레반의 최고 지도자 물라 무하마드 오마르를 처음 만났습니다. 그에게 나라가 피폐해지고 국민들이 고통을 받는 것을 막으려면 테러 배후로 지목된 오사마 빈 라덴을 아프가니스탄에서 내보내라고 권유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귀담아듣는 것 같지 않더군요.”

아프가니스탄 무자헤딘(이슬람 전사)출신으로 탈레반 최고 지도자 오마르를 직접 만날 수 있을 정도의 아프가니스탄 유력인사인 아흐마드 라티브(38·사진)를 2일 만나 최근 아프가니스탄 상황을 상세히 들었다.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에 머물며 사업을 하는 라티브씨는 미국을 상대로 한 테러가 발생한 직후 아프가니스탄으로 들어가 9일간 체류하며 국내상황을 상세히 살피고 난 후 3일부터 다시 일주일간 카불을 방문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오마르에 대해 “수백년 전의 사회에 걸맞은 종교지도자이지 오늘날 한 나라를 경영할 지도자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지금 수도 카불은 주민들이 대거 피란길에 올라 도시의 60%가 텅 비었고 탈레반의 거점도시로 미국의 첫 번째 공격목표가 될 것으로 알려진 칸다하르는 더욱 심해 집집마다 남자 한두 명이나 경비원만 있을 뿐이고 90%가 텅 비어있더군요. 일주일에 세 차례 가량의 반미데모 때만 사람 구경을 할 수 있어요.”

그가 만난 탈레반 정부 관리나 사업가들은 “미국이 공격을 하면 관공서를 가장 먼저 칠 것 아니냐”고 걱정하면서 관공서 출입을 꺼렸다. 라티브씨도 전쟁이 터질 것에 대비, 카불에 있는 철강공장의 문을 닫고 경비원 10명을 고용한 뒤 직원 100여명에게는 피란을 갈 수 있도록 조치했다. 물건은 지방에 있는 창고로 옮기고 기계는 모래주머니로 겹겹이 싸놓았다. 그는 파키스탄의 면화와 타지키스탄의 석유 등을 사다가 아프가니스탄에 파는 사업을 하고 있지만 현재는 거래가 끊겼다고 말했다.

라티브씨는 20여년 전 지하드(성전·聖戰)에 참여했다. 고향 카불에서 고교 1학년에 다니던 중 1978년 들어선 공산정부가 부친을 포함한 지식인 지주 사업가 등 10만여명을 처형하는 것을 보고 반정부 활동에 나섰다. 다음해 소련대사관을 폭파하러 나섰다가 동료가 조작을 잘못해 시한폭탄이 일찍 터지는 바람에 왼팔과 오른쪽 눈을 잃고 말았다. 그때가 17세였다.

“구 소련이 침공한 직후 1980년 가족과 함께 파키스탄으로 왔습니다. 그 후 페샤와르와 카불을 오가며 소련과 맞서는 무자헤딘 조직의 연락책임을 맡았습니다. 페샤와르 본부에서 무자헤딘을 모집해 카불로 보냈고 국경근처의 무기시장에서 로켓포 등을 구입해 나귀에 실어서 카불로 날랐습니다. 때로는 수류탄으로 탱크에 맞서는 등 전투에도 참여했습니다.”

그는 당시 소련군에 저항했던 7개 지하드 조직 중 하나인 아프가니스탄 전국자유전선(ANLF)의 책임을 맡았던 매형 시브가툴라 모자데디 전 대통령의 지휘를 받았다.

조국을 짓밟고 이슬람을 파괴하는 소련군에 맞서는 힘겨운 일들도 그에겐 ‘행복한 임무’였다. 그는 “사명감과 희생정신으로 지하드에 참여했다”고 회고했다.

그는 5년간 무자헤딘으로 투쟁하다가 미국으로 건너가 섬유관련 무역업에 뛰어든 후 1997년 귀국, 다음해부터 카불에서 사업을 시작했다. 그는 “과거 소련은 아프가니스탄의 종교 관습 등 모든 것을 바꿔놓으려고 해서 이슬람을 지키기 위한 지하드가 선포됐던 것이지만 이번엔 미국이 테러리스트의 거점을 공격하겠다는 것이므로 과거와는 다르다”면서 “큰 희생이 따르는 전쟁보다는 대화와 평화가 낫다”고 강조했다.

<이슬라마바드〓홍권희기자>koni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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