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키스탄 언론人이 밝힌 오마르-빈 라덴 관계

  • 입력 2001년 9월 27일 18시 37분


아프가니스탄에 은신중인 것으로 알려진 오사마 빈 라덴과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집권세력의 최고종교지도자인 물라 모하마드 오마르.

미국 등 정보기관의 추적에도 불구하고 행방이 묘연한 두 사람은 이와 잇몸처럼 밀접한 사이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두 사람을 각각 만난 적이 있는 파키스탄의 언론인 라히물라유수프자이는 “두 사람 관계는 세간에 알려진 것처럼 그렇게 각별한 것 같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영국 일간지 가디언 26일자에 게재된 글에서 두 사람을 만난 경위 등을 소상히 밝혔다. 유수프자이는 1995년 3월 오마르를 처음 만났으며 빈 라덴과는 98년 5월 이후 수차례 접촉했다.

유수프자이는 “오마르는 빈 라덴을 손님에 대한 예의로 대접하고 있었지만 그가 스스로 떠나주길 바라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유수프자이는 그 같은 사례로 98년 빈 라덴의 초청을 받고 아프가니스탄을 방문, 사흘을 기다린 끝에 만났을 때의 일을 소개했다.

빈 라덴은 당시 유수프자이를 통해 미국과 이스라엘에 대한 ‘성전’을 발표하려 했다. 그러나 이 계획을 전해들은 오마르는 “아프가니스탄에는 한 명의 지도자가 있을 뿐”이라며 몹시 화를 냈다는 것. 결국 빈 라덴은 오마르에게 사전 양해를 구하지 않은 데 대해 사과한 뒤에야 ‘성전 선포’ 메시지를 발표했다는 것.

빈 라덴은 개입 의혹을 받고 있는 대부분의 테러 사건과 무관하다고 부인했다. 98년 케냐와 탄자니아 주재 미국대사관 폭파사건에 관해서도 그는 “우리가 한 일은 아니지만 기분은 좋다”고 말했다는 것.

빈 라덴의 전기를 쓴 파키스탄 언론인 하미드 미르 역시 빈 라덴이 연루 의혹을 받고 있는 대부분의 사건과 무관함을 강조했다고 전했다. 빈 라덴이 관여를 시인한 유일한 사건은 93년 소말리아에서 미군 병사 18명이 살해된 사건.

빈 라덴은 11일 미국 연쇄테러 직후에도 미르에게 “우리가 한 일이 아니다”는 짤막한 메시지를 보냈다고 한다.

노출을 극도로 꺼리는 오마르는 13, 14일 미국의 공격에 대비한 전시동원체제를 선포할 때도 탈레반의 공식 대중매체인 ‘샤리아’ 라디오 방송을 통해 성명을 대독시키는 형식을 취했다. 아프가니스탄 소식통에 따르면 오마르는 서방 정보기관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사람을 직접 만나 지시를 내리고 있으며 불가피한 경우에만 감청하기가 쉽지 않은 위성전화를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홍성철·박윤철기자>sungchu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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