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권 "美에 미운털 박힐라"…중동국입장 미묘한 변화

  • 입력 2001년 9월 17일 18시 31분


파키스탄 국경 경계태세
파키스탄 국경 경계태세
미국이 아프가니스탄과 오사마 빈 라덴을 상대로 한 보복전쟁을 천명하면서 중동 국가들이 이전과는 다른 대응을 하고 있다. 상당수 국가들이 사이가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테러를 근절하려는 미국의 노력에 지지를 표시했고 일부는 미국과 협조하려는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다.

물론 중동 국가들이 이슬람 형제국가인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무력 보복공격에까지 찬성하지는 않지만 미국에 상당한 호의를 보이는 것은 테러 대응에 대한 국제무대의 변화를 보여주는 것이어서 주목된다.

미국도 최근 소원한 관계를 유지하던 이란과 시리아 등 일부 중동 국가의 지도자를 상대로 이해와 협조를 당부하는 등 보복공격을 앞두고 중동 국가들을 상대로 적극적인 구애작전을 펼치고 있다.

1997년 개혁파인 모하마드 하타미 대통령 체제 출범 이후 줄곧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모색하고 있는 이란은 미국에 대한 테러를 국제사회에 대한 도전이라고 규탄하는 등 가장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후세인 자레 세파트 이란 보안장관은 16일 “아프가니스탄으로부터 몰려올 난민의 유입을 막기 위해 국경을 폐쇄할 것”이라고 말했다. 카말 카라치 이란 외무장관은 이날 잭 스트로 영국 외무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테러리즘에 대항하는 국제적인 협력이 필요하다”며 국제사회의 대응에 협조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AP통신은 이라크 리비아 수단 등과 함께 테러지원국으로 꼽혀온 이란이 이번 기회를 틈타 미국과의 적대관계를 청산하기 위해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고 전했다.

물론 이들의 변화를 유도한 것은 미국이다.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은 15일부터 시리아와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모로코 등 중동의 각국 지도자에게 전화를 걸어 협조를 당부했다.

16일 CBS방송에 출연한 파월 장관은 “미국의 협조요청 이후 시리아와 이란 등 테러지원국가들이 발표한 전향적이고 긍정적인 성명내용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며 “이를 계기로 이들 국가와 공조 가능성을 새롭게 타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표적인 반미국가인 리비아의 무아마르 카다피 국가원수도 “공격으로 테러리즘이 해결될지 의문이며 미국은 슈퍼파워답게 이번 전쟁이 초래할 결과를 냉철하게 고려해야 한다”는 조건을 달기는 했지만 “미국은 끔찍한 테러에 대항해 보복할 권리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군사행동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중동 국가가 분명한 반대입장을 보이고 있다. 아프가니스탄과 외교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이집트의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은 15일 관영 일간지 ‘알 아흐람’을 통해 “테러에 대한 국제적인 응징이 필요하지만 동맹군을 구성해 특정국가를 공격하는 것은 국제테러를 억제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며 미국의 자제를 요청했다.

요르단의 압둘라 2세 국왕도 16일 군사행동 참여를 유보한다고 밝힌 뒤 “미국이 팔레스타인 사태 등 중동문제를 제대로 처리했다면 이번 비극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백경학기자>stern10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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