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테러 대참사]'뉴테러리즘'과의 전쟁 시작됐다

  • 입력 2001년 9월 13일 18시 57분


요구조건도 없고, “내가 공격했다”고 나서는 사람도 없는 테러. 그러나 피해 규모는 전쟁 수준. 세계 테러연구가들은 미국의 심장부를 겨냥한 이번 테러 공격을 ‘뉴 테러리즘’ 혹은 ‘포스트모던 테러리즘’으로 불리는 신종 테러리즘의 전형이라고 보고 있다.

▽이전의 테러와 무엇이 다른가〓‘뉴 테러리즘’의 개념을 정립한 것은 미 국방부 등의 후원을 받는 미국의 민간연구소 랜드(RAND).

99년 ‘뉴 테러리즘에의 대응(Countering the New Terrorism)’을 공동 저술한 이 연구소 미셸 자니니 연구원은 11일 웹진 ‘살롱’과의 인터뷰에서 “과거의 테러가 극단적 수단을 동원한 의사소통(커뮤니케이션) 행위였다면 뉴 테러리즘은 전쟁을 수행하는 것”이라고 패러다임 변화를 설명했다.

전쟁에서는 적의 궤멸이 목적이므로 승리 이외에 요구조건이 있을 수 없으며 상대방에게 최대한 타격을 입히는 것이 목표라는 것. 이번 테러의 유력한 용의자인 오사마 빈 라덴은 1990년대 중반 ‘미국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테러연구가들은 이전까지 테러의 목적이 요구 관철이나 세인의 이목을 끌어 자신을 알리는 ‘존재확인’에 있었다면, 뉴 테러리즘은 구질서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질서를 구축하는 것이 목표라고 해석한다. 대표적인 구질서가 미국이 경영하는 ‘팍스 아메리카나’ 체제다.

▽정보시대의 망전쟁(Netwar)〓뉴 테러리즘의 피해자들은 적을 쉽게 정의할 수 없는 딜레마에 빠진다. 조지 W 부시 대통령도 이번 테러가 일어난 뒤 ‘전쟁 불사’를 공언했지만 누구를 상대로 싸워야할지는 불명확하다. 교전 상대가 단일 국가가 아니라 인터넷처럼 그물망 조직으로 연결된 이념 결사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테러연구가들은 뉴 테러리즘을 ‘정보시대의 망(網)전쟁’이라고도 부른다.

전통적인 테러조직은 카리스마적인 지도자가 지배하는 수직형 체제였다. 그러나 뉴 테러리즘에서는 중심이 다원화돼 느슨한 그물코로 연결돼 있다. 과거에는 정점의 지도부 제거로 테러조직을 무력화할 수 있었지만 뉴 테러리즘에서는 하나의 중심을 제거해도 다른 중심이 그 역할을 대신한다. 이번의 경우 빈 라덴이 체포돼도 조직 무력화에는 역부족이라는 회의론이 제기된다.

뉴 테러리즘은 또 인터넷 시대의 기술들을 무기로 쓰는 것이 특징이다. 채팅룸이 전략회의실, e메일이 전령 역할을 하며 거미줄식 조직을 잇는다.

정보시대 논리에 익숙한 만큼 뉴 테러리스트들은 적 시스템의 균열을 초래하는 것만으로도 전면적인 공격에서 얻을 수 있는 ‘붕괴’ 효과를 거둘 수 있음을 알고 있다. 이번 뉴욕 세계무역센터 공격도 건물이 갖는 상징적 의미 못지않게 미국의 경제 동맥인 월가의 급소를 노린 것으로 풀이된다.

테러연구가들은 뉴 테러리즘의 대응책으로 막연히 지상전을 펼칠 것이 아니라 이들의 생명선인 ‘정보 흐름’부터 차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부 연구가들은 미국 헌법에 명시된 ‘알 권리’와의 충돌이 생기더라도 사이버공간을 검열해야 한다는 극단론을 펴고 있다.

<정은령기자>ry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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