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라크-조스팽 “美 이익만 챙긴다” 맹공

  • 입력 2001년 8월 31일 18시 33분


【미사일방어(MD) 체제 강행, 기후변화협약 교토의정서 비준 거부, 유엔 인권이사국 탈락, 중동문제에 대한 소극적인 대처, 반(반)인종차별회의 불참…. 조지 W 부시 행정부 출범 이후 미국이 국제무대에서 외교적으로 ‘고립’의 길을 걷고 있다. 이 틈을 타고 유럽, 그 중에서도 특히 독일과 프랑스가 독자적인 외교노선을 표방하면서 국제사회의 새로운 중재자로 부상하려는 움직임을 가속화하고 있다. 향후 이들 두 나라의 행보가 주목된다. 】

프랑스의 자크 시라크 대통령과 리오넬 조스팽 총리, 위베르 베드린 외무장관은 최근 앞다퉈 미국의 정책에 반대하거나 미국을 직접 비난하는 반미(反美) 공세를 퍼붓고 있다.

베드린 외무장관은 지난달 29일 일간지 르 피가로와의 회견에서 “조지 W 부시 미 행정부의 중동정책은 소신 없이 관망만 하다가 예수에 십자가형을 선고한 로마의 유대 총독 본디오 빌라도를 연상케 한다”고 비난했다.

미국 정부가 빌 클린턴 행정부 때와는 달리 중동문제에 거리를 두고 있는 점을 빗댄 것이다. 그는 지난달 28일 파리에서 열린 프랑스 해외공관장 회의에서도 “미국이 고압적이고 일방적으로 자국 이익만을 챙기고 있다”고 연설하는 등 연일 미국에 비난의 화살을 날리고 있다.

같은 날 조스팽 총리는 프랑스 TF1 TV에 출연해 “국제자본 이동에 세금을 부과하자는 이른바 ‘토빈세’ 구상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토빈세는 미국의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제임스 토빈이 국제투기자본의 창궐을 막기 위해 국가간 자본 거래에도 세금을 매기자고 주장한 데서 나온 것.

반세계화 단체들의 오랜 지론인 토빈세 채택을 조스팽 총리가 지지한 것은 미국 중심의 세계화에 제동을 거는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앞서 시라크 대통령은 지난달 27일 대통령궁 연설에서 “미국이 추진하는 미사일방어(MD) 체제는 만병통치약이 아니다”며 “미국이 폐지를 요구하는 탄도탄요격미사일(ABM) 협정은 유지돼야 한다”고 말했다.

프랑스 지도자들의 잇단 반미 발언은 부시 행정부 출범 이후 미국이 국제문제에 손을 놓고 있는 사이 프랑스가 독자 외교노선을 강화하면서 미국을 대신해 국제문제의 중재자로 부상하려는 시도의 일환이라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파리〓박제균특파원>ph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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