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군용기 충돌]미-중 관계 급속 악화…신냉전 우려

  • 입력 2001년 4월 2일 18시 35분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 취임 이후 찬바람이 감돌던 미국과 중국의 관계가 1일 발생한 미 정찰기와 중국 전투기의 충돌사고로 설상가상(雪上加霜)의 위기에 빠졌다. 최악의 경우 양국 관계가 냉전시대를 방불케 하는 대립과 대치 국면으로 치달을 것이라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흥분한 중국의 일부 네티즌들은 ‘이번 충돌은 전쟁’이라며 미국을 성토하고 있고, 베이징(北京) 시민들은 재작년 유고주재 중국대사관이 폭격 당했을 때와 같은 느낌이라며 분노를 감추지 않고 있다.

이번 사건이 조기에 매끄럽게 해결되지 않을 경우 △미국의 대만에 대한 이지스급 구축함 판매 검토 △스파이 혐의로 억류된 중국계 미국 학자 가오단(高膽)의 처리 문제 △중국군 고위장교의 미국 망명 △중국인권문제에 대한 미국의 압력 등으로 인해 ‘불꽃’이 튀고 있는 양국 관계에 ‘기름’을 끼얹는 꼴이 될 것이라고 우려하는 전문가들이 많다.

미국의 정찰기와 승무원 24명이 중국의 수중에 들어갔기 때문에 미국은 협상에서 극도로 불리한 상황이다. 때문에 워싱턴 외교가에서는 이번 사건이 부시 행정부의 외교역량과 중국정책이 계속 강성기조를 띨 것인지를 가름하는 시험무대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사고원인에 대한 양국 주장〓미 태평양 사령부는 이번 사고는 통상적인 정찰활동을 벌이던 EP3 정찰기가 중국 전투기 2대의 추격을 받는 과정에서 발생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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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니스 블레어 태평양 사령부 사령관은 “이번 충돌은 우발적 사고로 생각되나 중국 전투기들은 지난 몇 개월 동안 매우 위험한 방법으로 미국 정찰기를 추격해 왔다”며 중국측을 비난했다. 블레어 사령관은 중국 전투기의 속도가 무거운 정찰장비를 갖춘 미 정찰기보다 훨씬 빠른 점을 지적하며 “국제항공규칙에는 속도가 빠른 항공기가 속도가 느린 항공기의 항로에서 비킬 의무가 있다”며 “누가 누구를 들이받았는지는 명백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중국 외교부는 미군 정찰기가 중국 전투기를 향해 갑자기 기수를 돌리는 바람에 충돌이 일어났다고 주장했다. 중국측은 미국의 잘못으로 밝혀질 경우 추락 전투기 배상문제도 제기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 정찰기와 승무원 처리 문제〓미국은 중국 하이난섬에 비상착륙한 정찰기에 중국이 상상하는 것 이상의 엄청난 첨단정보 수집장비가 실려 있어 중국 군부가 이를 조사하거나 압류할 경우 국가안보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사건 발생 직후 미국이 정찰기의 법적 지위는 ‘미국 영토와 같다’며 중국 군부가 정찰기에 대한 탑승해 조사하거나 압류를 하지 못하도록 즉각 경고한 것도 이 때문이다.

정찰기 승무원들은 평소 위험한 상황이 발생하면 민감한 정보와 정보수집수단을 파기하도록 훈련받았으나 이번에도 그같은 수칙에 따라 행동했는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미국은 태평양 사령부의 해군 제독 출신인 조지프 프루허 주중대사 등을 통해 승무원과 정찰기의 조기 송환에 외교적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정보수집능력을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갖게 된 중국이 미국의 요구를 순순히 받아들일 것 같지는 않다. 중국은 미 정찰기가 영공을 침범했다고 주장하고 있어 미군기의 정찰내용까지 조사할 방침임을 시사했다.

무단 착륙문제도 쟁점이다. 중국은 미 정찰기가 허락도 받지 않고 하이난다오 공항에 착륙했다고 밝혔으나 미국은 긴급 조난구조 신호를 보냈다고 주장하고 있다.

▽영공침범 여부〓미국은 사고지점이 하이난다오에서 남동쪽으로 70마일(112㎞)떨어진 공해 상공이며 중국 영해로부터 12마일(19㎞) 벗어난 지점이어서 누구든 자유롭게 비행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중국측은 사고지점이 하이난섬 남동쪽 62마일(99㎞) 상공으로 중국 영공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그러잖아도 분쟁이 빈발하고 있는 남중국해 해역에 대한 영유권 분쟁을 확대시킬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2월 이 해역 황옌(黃巖)섬 부근에서 조업중이던 중국어선을 필리핀측이 나포하면서 필리핀과 황옌도 영유권 분쟁을 빚고 있는가 하면 이 해역 난샤(南沙)군도 영유권 문제를 둘러싸고 99년 3월 베트남과는 무력충돌을 빚기도 했다.

<베이징·워싱턴〓이종환·한기흥특파원>ljhzi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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