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러 외무 "우리는 외로운 온건주의자"

  • 입력 2001년 3월 27일 18시 37분


《미국과 러시아의 외교수장인 콜린 파월 국무장관과 이고리 이바노프 외무장관이 강경론자들에게 둘러싸인 채 외롭게 ‘대화와 타협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들은 조지 W 부시 행정부 출범 이후 미국이 힘을 바탕으로 한 정책을 추진하면서 특히 미―러, 미―중관계가 악화되자 상대방을 배려하자는 온건론을 주창하고 있다. ‘신 냉전시대 도래’라는 파국은 막아야 한다는 이들의 신념이 보수강경파의 ‘큰 목소리’를 잠재울 수 있을까.》

▼미 콜린 파월▼

‘매파들로 가득찬 행정부 내의 외로운 비둘기.’

미국의 USA투데이지는 26일 콜린 파월 국무부 장관의 현 상황을 이렇게 묘사했다. 전반적으로 보수강경 성향을 띠고 있는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행정부에서 온건파인 파월 장관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얘기다.

파월장관은 군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대화를 통한 분쟁 해결 방식을 지향하고 있어 보다 강경한 외교정책을 선호하는 부시 대통령 및 다른 각료들과 불화를 빚고 있다.

이달초 부시 대통령과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한미 정상회담이 열렸을 때 파월장관은 “북한이 태도를 개선하면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말했으나 부시 대통령은 “북한을 신뢰하지 않는다”고 반대로 나갔다. 결국 파월장관은 “클린턴 행정부가 중단한 곳에서 대북 정책을 시작하겠다”는 발언을 취소하기까지 했다.

파월장관은 부시대통령이 이산화탄소 배출규제에 관한 선거공약을 철회했을 때는 환경보호주의자들 및 외국 정부의 편에 서기도 했다.

뉴욕타임스지도 이날 국무부와 국방부가 외교정책의 주도권을 놓고 암투를 벌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국방부는 사담 후세인 이라크대통령에 대한 강경대응을 주장하고 있지만 파월 국무장관은 이라크에 대한 제재완화를 선호하고 있으며 독자적인 군사력을 확보하려는 유럽연합(EU)의 움직임에 대해서도 상반된 입장을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대북(對北) 미사일협상과 대중, 대러 정책에서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는 이런 갈등은 국방부 출신이면서도 신중한 면모를 보이고 있는 파월 장관과 국가미사일방어(NMD)체제 구축 문제를 비롯한 중요사안에서 강경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의 개인적인 성향 차이 때문에 촉발됐다고 신문은 분석했다. 파월장관은 일방적인 접근을 선호하는 럼스펠드장관보다 동맹국과의 관계를 중시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는 것.

미 행정부 내에서 주요 외교정책에 상반된 주장이 제기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지만 현재 나타나고 있는 국방부와 국무부의 갈등은 서로 다른 국무 국방장관의 성향과 이에 못지 않은 상반된 인적구성이라는 구조적 차이에 따른 것이어서 상당기간 계속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뉴욕타임스는 전망했다.

<워싱턴〓한기흥특파원>eligius@donga.com

▼러 이바노프▼

“냉전시대로 돌아가는 것만은 막아야 한다.”

미국과 러시아의 갈등이 깊어지면서 강경대응으로 치닫고 있는 러시아 정부 내에서도 사태를 정치적으로 해결하려는 외로운 ‘온건파’의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이고리 이바노프 외무부장관은 26일 관영 ORT방송을 통해 “미국과 러시아는 세계안보에 대한 공동책임을 지고 있기 때문에 상호협력해야 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 냉전시대로 돌아가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미국과 러시아의 스파이 분쟁이 양국관계에 영향을 미치지 않기를 희망한다’는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발언을 환영한다”고 덧붙였다.

이바노프 장관은 미국의 러시아 외교관 추방 발표로 양국 관계가 최고로 경색됐던 22일에도 “러시아도 같은 수의 미국 외교관을 맞추방할 것”이라는 미 CNN방송의 보도를 부인하고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과 장시간 전화통화를 하며 불길을 잡기 위해 힘쓰는 등 고군분투했다.

그러나 구소련 국가보안위원회(KGB)출신인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집권 후 러시아에서는 이바노프 장관 같은 정통 외교관보다는 세르게이 이바노프 안보회의 서기 등 안보통들이 외교정책을 주도하고 있어 이바노프 장관의 노력은 큰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대표적인 강경론자인 이바노프 서기는 “부시 대통령 등 미국 지도자들의 말을 믿을 수 없다”며 분노를 누그러뜨리지 않고 있다.

미국―캐나다 연구소의 알렉세이 보가투로프 상임연구원은 “민간 전문가 사이에는 대화를 통해 미국과의 관계를 개선해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지만 크렘린을 장악한 KGB출신들은 여전히 미국을 대화상대보다는 ‘적’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고 전했다.

<모스크바〓김기현특파원>kimkihy@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