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대담]"부시는 현실주의자…NMD 강행안할 것"

  • 입력 2001년 1월 12일 18시 50분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 소재 라이스대의 맬컴 길리스 총장이 10일부터 12일까지 서울을 방문해 한국 경제상황을 살피고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을 예방하는 등 바쁜 일정을 보냈다. 라이스대는 과학기술 분야에서 2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명문 사립대. 길리스 총장은 듀크대 사회과학대 학장과 하버드대 경제학 교수를 지냈으며 93년 라이스대 총장으로 부임했다. 미 정부와 국제 금융기관의 고문을 역임했고 현재도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자문역을 맡고 있는 경제전문가다. 길리스 총장은 11일에는 동아일보사를 방문, 김학준(金學俊)상임고문과 차기 미 행정부의 외교정책 등에 관해 의견을 나눴다. 이 자리에서 길리스 총장은 조지 W 부시 대통령당선자와도 인연이 깊어 차기 행정부 참여를 요청받았으나 학문의 길에 전념키 위해 거절했다고 밝혔다. 길리스 총장은 이날 오전에는 서울대 이천표(李天杓)경제학부장 등 경제학과 교수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길리스 총장과 김고문 및 서울대 교수들과의 대담을 정리했다. 》

―부시 당선자가 지사로 있던 텍사스주의 라이스대 총장을 8년째 맡으면서 부시 당선자와 상당한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특히 라이스대에는 부시의 핵심 참모 가운데 한 사람인 제임스 베이커 전 국무장관을 기념하는 베이커 공공정책연구소가 있기 때문에 부시행정부의 대내외정책에 대해 비교적 밝을 것으로 짐작된다. 부시 행정부가 어떤 정책을 펼칠 것으로 보는가. 또 우리의 관심사인 김대중 대통령과 부시 당선자의 조속한 면담이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하는가.

▼베이커, 金대통령 구명 요청▼

“우선 김대통령과 베이커 전 국무장관 사이의 비화를 소개하고 싶다. 김대통령이 1980년 신군부에 의해 사형선고를 받았을 때 깊은 관심을 기울인 최초의 미 고위정책결정자가 베이커였을 것이다. 그때 그는 로널드 레이건 당시 대통령 당선자의 비서실장이었다. 그는 레이건에게 김대통령의 사형을 막아야 한다고 강하게 건의했다. 대신 미국으로부터 ‘인정’받길 원하는 전두환(全斗煥)당시 대통령에게 백악관 방문과 한미 정상회담을 약속하는 것이 좋겠다고 건의했다. 레이건은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곧바로 이를 실천했다. 이런 인연으로 베이커는 레이건 행정부에서 대통령 비서실장과 재무장관 국무장관 등으로 재임하는 동안에도 김대통령에게 깊은 관심을 가졌고 오늘날에도 좋은 인상을 갖고 있다.

부시 행정부가 취할 대내외정책의 큰 틀을 알려면 첫째, 미 경제가 앞으로 6개월에서 9개월 정도 침체를 보일 것이라는 전망에 유념해야 한다. 이미 10년째 침체를 기록하고 있는 일본 경제도 침체국면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만큼 한국경제에 주는 부작용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미 경제침체는 오래가지 않을 것이고 부시 행정부는 이를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국내적으로 대대적인 감세정책, 대외적으로는 자유무역을 확대할 것이다.

둘째, 외교문제와 관련해 부시 당선자는 콜린 파월 국무장관 지명자와 콘돌리자 라이스 차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에게 크게 의존할 것이다. 특히 라이스 보좌관의 영향력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부시 당선자는 모든 문제에 개입하기보다는 관계자들에게 업무를 위임하는 지도자임을 고려할 때 외교정책에 대해서는 라이스 보좌관의 판단과 건의를 중시할 것이다. 미군의 군사개입은 크게 줄어들 것이다. 파월 지명자와 라이스 보좌관은 미군이 세계 경찰이 돼야 한다고 믿지 않는다. 한 가지 중요한 점은 베이커 전 국무장관이 막후 실세로 부상할 것이라는 점이다. 부시 당선자는 베이커 전 국무장관 때문에 선거에서 이겼다고 생각한다. 그에게 중요한 역할을 부여함으로써 보답할 것이다.”

―미국의 정책결정과정에서 의회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그런데 상원은 공화당과 민주당이 각각 50 대 50의 의석분포를 보이고 있고 하원은 공화당이 우세하지만 차이는 미세하다. 이런 의회를 상대로 부시행정부가 얼마나 독자적인 목소리를 낼 것으로 보는가.

“그 점을 부시 당선자는 깊이 인식하고 있고 이 때문에 ‘양당협조’를 강조하고 있다. 그는 타협주의자로 텍사스주지사 때도 주 상하원을 상대로 양당협조를 강조하며 주정부를 이끌었다.”

―전문가들은 부시행정부가 ‘강성외교’를 펼칠 것으로 전망한다. 국가미사일방어체제(NMD)와 전역미사일방어체제(TMD) 등을 강력히 추진할 것이고 거기에 반대하는 러시아와 중국 및 북한 등으로부터 큰 반발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예상돼 국제관계에 긴장을 조성할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

“나의 견해는 다르다. 라이스 보좌관을 비롯한 외교안보분야의 참모들이 강성외교 정책을 지지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이들로부터 부시 당선자는 많은 영향을 받을 것이다.그러나 NMD 등에 관해 의회의 폭넓은 지지를 얻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민주당 의원들은 대부분 반대하고 있고 공화당 의원 중에서도 반대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합리적인 현실주의자 부시 당선자가 이런 정책을 왜 무리하게 추진하겠는가. 나는 회의적으로 본다. 현재 세계의 조류는 화해와 협력이다. 긴장의 조성과, 심지어 긴장의 고조를 부시 행정부가 지향한다고 믿지 않는다.”

―총장께서는 2차 세계대전 후 미국이 유럽을 상대로 ‘미국의 원조에 바탕을 둔 유럽부흥계획’을 세운 조지 마셜 전 국무장관을 높이 평가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북한에 대해서도 ‘마셜플랜’을 적용해야 한다고 보는지….

▼'북한식 마셜플랜' 건의 용의▼

“‘평화를 원하거든 이웃부터 도우라’고 한 마셜을 개인적으로 존경한다. 북한과 평화를 원한다면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북한을 도와야 한다. 부시행정부에 ‘북한식 마셜플랜’을 건의하고 싶다. 북한은 부시 참모들이 갖고 있는 ‘북한의 핵개발은 전면적으로 중단돼야 하고 미사일개발과 수출도 결코 허용할 수 없다’는 믿음에 대해 적절하게 그리고 정직하게 반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부시행정부는 이 문제만큼은 조금도 양보하지 않을 것이다. 이에 대해 서로 만족할 만한 해답이 마련된다면 북한과 미국 사이의 관계는 새로운 긍정적인 방향으로 전개되리라 믿는다. 북한이 건설적인 방향으로 결단을 내리길 기대한다. 미국의 대북 정책은 파월 국무장관 지명자가 책임질 것이다. 라이스 보좌관은 유럽, 파월 지명자는 아프리카와 아시아쪽을 맡을 것이다.”

―미 경제가 어려워지고 있는데 부시 당선자의 경제팀 구성을 어떻게 보는가.

“빌 클린턴 행정부에서 경제를 아는 사람은 로버트 루빈 전 재무장관과 래리 서머스 재무장관 정도였다. 부시 당선자는 실물경제에 밝은 재계 인사들을 경제팀에 대거 영입했다. 클린턴 대통령은 개인적으로 경제에 대해 전혀 모른다. 부시 당선자도 경제에 대해 잘 모르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나 그는 적어도 아는 척은 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능력 있는 인사들에게 맡기는 스타일이다.”―대학총장으로서 미국과 한국의 교육의 질을 비교한다면….

“한국은 초등교육이 강한 반면 대학교육이 약하다. 반대로 미국은 초등교육의 질은 낮지만 대학교육이 탄탄하게 이뤄진다. 덕분에 미국은 첨단산업에서 앞서갈 수 있다.”

<정리〓정미경기자>mickey@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