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러 외교 주도권 싸움 치열

  • 입력 2000년 11월 29일 00시 07분


러시아와 미국이 아시아태평양 및 중동 지역에서 오랜만에 치열한 외교전을 벌이고 있다.

미국이 빌 클린턴 행정부의 집권 말기에다 대선 등 국내문제에 매여 외교에 신경을 쓰지 못해 주춤한 사이 러시아가 이들 지역에서 영향력 확대를 꾀하고 있는 것.

먼저 일본을 방문중인 이고리 세르게예프 러시아 국방장관은 미국과 일본이 구상중인 전역미사일방어체제(TMD) 계획을 전례 없이 강한 어조로 반대했다.

세르게예프 장관은 28일 “극소수 국가의 이해관계에 따라 구축되는 지역 내 미사일방어망 구축 계획에 결사 반대한다”며 “특정 국가들에 비전략 미사일방어망이 구축되면 다른 국가로 하여금 더 완벽한 공격용 미사일 개발을 부추길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또 “아태지역의 안정은 러시아의 이해관계에 부합하는 것이며 아태지역 내 정치상황은 전세계 안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결정적인 요인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러시아는 24일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의 모스크바 방문을 계기로 팔레스타인 지역의 유혈충돌 사태에도 적극 개입할 태세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대통령은 아라파트와 회담을 갖던 도중 이스라엘의 에후드 바라크 총리를 전화로 찾아 통화하도록 주선하기까지 했다.

러시아는 한술 더 떠 이란에 무기를 판매하겠다고 나섰다. 이에 미국은 “이란에 무기를 수출하면 즉각 ‘경제제재’를 가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26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만난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국 국무장관과 이고리 이바노프 러시아 외무장관이 이 문제로 설전을 벌였으나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다음주 미국에서 실무회담을 열기로 했다.

그러나 일리야 클레바노프 러시아 부총리는 27일 “국제협약에서 금지하지 않은 모든 것을 이란에 판매 제의할 준비가 돼있다”고 말했다.

세르게예프 장관은 이와 관련, “이란이 대량살상무기를 생산하도록 돕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미국은 “어떤 종류의 무기도 안된다”며 맞서고 있다.

양국은 95년 “이란에 무기를 판매하지 않는다”는 비밀협약을 맺었으나 최근 러시아는 이 협약을 더 이상 준수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소연방의 해체 이후 약체화한 러시아가 오랜만에 기지개를 켜듯 외교 공세와 함께 내놓고 무기수출까지 하려들자 미국은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다며 발끈하고 있다.

<모스크바〓김기현기자>kimkihy@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