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러 외교 주도권 싸고 갈등

  • 입력 2000년 11월 28일 18시 38분


러시아와 미국이 중동지역에서 오랜만에 치열한 외교전을 벌이고 있다.

지금까지 중동문제의 ‘해결사’였던 미국이 빌 클린턴 행정부의 집권 말기에다 대선 등 국내문제에 매여 외교에 그다지 신경을 쓰지 못하는 등 주춤하고 있는 사이 러시아가 영향력 확대를 노리고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24일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이 모스크바를 방문한 것을 계기로 이스라엘과의 유혈분쟁을 겪고 있는 팔레스타인 사태에 적극 개입할 태세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대통령은 아라파트와 회담을 갖던 도중 이스라엘의 에후드 바라크 총리를 전화로 찾아 두 사람이 서로 통화하도록 주선하기까지 했다.

러시아는 또 이란에 무기를 판매하겠다고 나서 미국을 당혹스럽게 하고 있다.

이에 대해 미국은 “러시아가 이란에 무기를 수출하면 즉각 ‘경제제재’를 가하겠다”고 밝혀 양국의 갈등이 한층 고조되고 있는 양상이다.

26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만난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국 국무장관과 이고리 이바노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이 문제를 놓고 설전을 벌였으나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다음주 미국에서 실무회담을 열어 논의를 계속하기로 했다.

그러나 일야 클레바노프 러시아 부총리는 27일 “우리가 서명한 국제협약에서 금지하지 않은 모든 것을 이란에 판매 제의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해 이란과 재래식 무기판매 협상을 추진할 계획임을 다시 확인했다.

이고리 세르게예프 국방장관은 이와 관련, “러시아는 이란이 대량살상무기를 생산하도록 돕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혔으나 미국은 “어떤 종류의 무기도 안 된다”며 맞서고 있다.

양국은 95년 “이란에 무기를 판매하지 않는다”는 비밀협약을 맺었으나 최근 러시아는 이 협약을 더 이상 준수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미국은 그동안 러시아 과학자들이 이란에 미사일기술을 팔고 있다고 의심해온 터에 러시아가 공개적으로 이란에 무기를 팔겠다고 나서자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다는 입장이다.

반면 러시아는 최근 전에 없이 무기수출에 적극적이다. 무기가 원유와 함께 최대 수출품목이라는 경제적 이유말고도 미국에 맞설 유일한 분야라는 인식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세르게예프 러시아 국방장관은 27일 일본 방문길에 오르기에 앞서 “북한이나 일본과의 군사기술 협력을 희망한다”고 밝혀 방산 분야에 대한 러시아의 집착을 드러냈다.

<모스크바〓김기현기자>kimki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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