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규장각 도서 韓-佛합의]7년 끌어온 협상 '교환' 매듭

  • 입력 2000년 10월 20일 01시 14분


자크 시라크 프랑스대통령이 19일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외규장각 도서를 내년 중 반환키로 약속함에 따라 7년여를 끌어온 이 문제가 해결의 돌파구를 찾게 됐다.

프랑스가 외규장각 도서를 우리나라에 장기 임대하는 대신 한국은 이에 걸맞은 가치를 가진 도서들을 프랑스에 빌려주는 식으로 구체적인 타결점을 찾기로 한 것이다. 이에 따라 국내에 없는 유일본 64책을 포함해 프랑스가 갖고 있는 외규장각 도서 297책이 일단 국내로 돌아올 수 있게 됐다.

프랑스 국립도서관이 보관하고 있는 외규장각 도서는 조선시대 국왕 왕비 세자 등의 책봉을 비롯한 왕실 행사를 기록한 의궤(儀軌)들이다. 특히 국왕 열람용인 '어람용(御覽用)’은 보물급으로 평가된다. 다음달 6일 열리는 실무 협상에서 최종 타결될 경우 프랑스에서 '어람용’ 의궤들을 돌려받는 대신 국내에 두 권이상 보존돼 있는 '비어람용’ 의궤들을 프랑스측에 넘겨주게 된다.

그러나 이번 정상회담 합의는 30%의 성공인 동시에 70%의 실패일 수밖에 없다. 프랑스가 보관 중인 외규장각 도서들은 병인양요(丙寅洋擾·1866년) 때 약탈해간 것이 분명한데도 '반환’이 아니라 '대등한 문화재 교환 전시’형식을 택한 것은 엄밀한 의미에서 보면 '교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런 방식은 외국으로 유출된 문화재를 환수하는데도 나쁜 선례가 될 수밖에 없다. 우리가 약탈 문화재 반환을 요구할 경우 다른 나라들도 외규장각 도서 반환 사례를 들어 '등가성 교환’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문화재 전문가들이 외규장각 도서의 장기임대 교환전시식 반환에 반대해 온 것도 이런 점을 걱정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 당국자들은 프랑스측에서 조건 없는 반환에 응하지 않고 있어 상호 맞교환이 차선책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프랑스에 넘겨줘야 할 의궤들을 소장하고 있는 서울대 규장각과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장서각 관계자들은 교환용 책을 내줄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더욱이 학계의 반발도 불을 보듯 뻔해 프랑스와 합의한다 하더라도 국내에서 분란이 일어날 공산이 크다.

서울대 규장각관장 정옥자교수(국사학과)는 "규장각 문서를 가져오는 대신 다른 자료를 내줄 수는 없다는 것이 현재의 입장”이라고 말했다. 고려대 민현구교수(한국사학과)도 “외규장각 도서가 교환 형식으로 들여올 만큼 가치가 있는 자료인지에 대해 면밀한 조사를 선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차수·김형찬기자> kimc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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