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O보고서]정보화 급물살, 근로자 정신질환 유발

  • 입력 2000년 10월 10일 19시 00분


신기술의 눈부신 발전은 근로자의 정신건강에 해로운 것일까.

정보통신혁명 등 신기술의 발전과 세계화의 충격이 지구촌의 근로자들을 정신질환으로 몰아가고 있다고 국제노동기구(ILO)가 9일 밝혔다.

ILO는 세계보건기구(WHO)와 공동연구해 작성한 보고서 ‘작업장에서의 정신건강’에서 신기술 도입 등이 작업 환경을 크게 변화시켜 세계 각국의 근로자들이 우울증 정서불안 신경쇠약에 빠지는 등 심각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ILO는 이번 조사에서 복지제도 근로환경 등이 판이한 미국 영국 독일 핀란드 폴란드 등 5개국 노동자들을 상대로 조사했다고 AFP통신이 전했다.

이에 따르면 국가 경제가 나쁠수록 근로자들이 정신질환으로 고통받을 확률이 높다. 90년대 이후 장기불황을 겪고 있는 핀란드의 경우 근로자의 무려 50% 이상이 스트레스로 인한 수면장애와 신체 이상 증후에 시달리고 있다. 역시 경기침체를 겪어온 독일은 조기 퇴직자의 7% 가량이 우울증 환자이며 정신질환자가 다른 질환자의 2배반 수준이라고 ILO는 밝혔다.

비교적 경제상황이 좋은 미국과 영국 근로자들의 상황도 심각하긴 마찬가지.

영국 근로자 10명 중 3명이 정신건강 문제로 고충을 겪고 있으며 20명 중 1명이 심각한 우울증에 빠져 있다. 미국에서는 4000만명이 각종 정신질환을 앓고 있으며 약 500만명은 증세가 심각하다.

이는 고용주들이 신기술과 기자재 도입 비용을 상쇄하는 생산성 향상을 근로자들에게 촉구할 뿐만 아니라 근로자들끼리도 지나친 경쟁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리기 때문이다. 새로운 작업환경에의 적응과 만성적인 고용 불안도 근로자들을 신경쇠약 등에 빠뜨리게 하는 요인들.

한편 이 같은 정신질환으로 인한 손실도 막대하다. 세계정신건강연맹(WFMH)은 북미와 유럽연합(EU) 권역 국가들이 매년 이로 인해 1200억달러(약 132조원)가량을 날린다고 추산했다.

ILO는 미국의 경우 우울증 치료비로만 매년 400억달러(약 45조원)가량이 소요되며 매년 2억 근로일이 헛되이 날아가고 있다고 추산했다. EU 회원국들의 경우 매년 국민총생산(GNP)의 3∼4%가 정신질환 비용으로 지출되며 특히 독일은 이와 관련한 장기결근으로 매년 50억마르크(약 2조4200억원)의 손실이 발생한다. 이 때문에 미국의 고용주들은 이미 신기술 도입과 작업환경을 변화시킬 때 근로자들이 느낄 정신적 압박 등을 고려하기 시작했다고 ILO는 밝혔다. 하지만 이런 고용주들의 의식 변화에도 가까운 미래에 정신질환으로 고통받을 근로자수가 줄기는커녕 더욱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ILO는 내다봤다.

<권기태기자>kk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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