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냉전시대 美CIA 추상미술 후원했다"

  • 입력 2000년 9월 26일 18시 39분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잭슨 폴록을 프로모션(promotiom)하는 활동을 했다.’

미국이 50년대에 소련을 압박하기 위해 달에다 원자폭탄을 터트리는 계획을 검토했다는 사실이 최근 확인됐다. CIA가 피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의 카리스마가 턱수염에서 나온다고 보고 잘라버릴 계획까지 세운 곳이므로 추상표현주의의 등장을 배후에서 지원했다는 얘기에도 한번쯤 귀기울여 볼 만하다.

영국의 작가이자 다큐멘터리 영화제작자인 프랜시스 스토너 선더는 최근작 ‘문화적 냉전:CIA와 문학예술의 세계’에서 이같이 주장했다. 물론 잭슨 폴록이 개별적으로 CIA에 의해 돈을 지원받았다는 식의 주장은 아니다. 영화감독 올리버 스톤식으로 CIA가 뉴욕현대미술관(MoMA)의 책임자였던 넬슨 록펠러 등과 함께 추상표현주의가 미술계에 자리잡는데 공헌했다는 주장이다.

선더는 이미 95년 10월 영국 일간지 ‘인디펜던트’에 “CIA가 폴록, 마크 로드코, 로버트 마더웰, 윌렘 드 쿠닝 등의 미국 현대미술을 냉전의 무기로 사용했다”며 “CIA가 20여년 동안 세계 각지에서 추상표현주의를 심는 작업을 지원해왔다”고 주장했었다. 호주 작가 피터 콜맨 역시 89년 ‘자유주의의 음모’라는 책에서 CIA가 문화자유회의(CCF)를 통해 52년 파리에서 열린 150여점의 현대미술작품 전시회를 후원했다고 썼다. 선더는 이번 책에서 “CIA가 추상표현주의 진흥체제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했다는 확증을 찾았다”고 주장했다.

선더에 따르면 냉전시대 MoMA의 관장 넬슨 록펠러는 문화계 고위인사와 CIA를 연결하는 고리였다. 록펠러 밑에서 톰 브래든이 MoMA의 운영을 돕다가 49년 CIA에 들어갔다. 브래든은 CIA가 추상미술에 직접 돈을 댄 점은 부인했지만 “미국은 베를린의 젊은이 모임에 돈을 대는 소련과의 문화전쟁에 지고 있었고 이에 대적할 전선을 구축할 필요를 느꼈었다”고 말했다. 그는 67년 5월 CIA가 CCF의 활동과 런던에서 발간되는 지성잡지 ‘인터운터’를 지원했다는 점을 폭로한 인물이기도 하다.

전 CIA 요원인 도널드 제임스는 선더와의 인터뷰에서 “브래든과 그의 부하 메이어가 공산주의에 적대적이면서 좌파 지성인을 사로잡을 수 있는 종류의 예술를 강조하는 대화를 들었다”며 “CIA의 미술프로그램은 소련의 트랙터 아트(tractor art)에 대적하기 위해 마련됐다”고 말했다.

<송평인기자>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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