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유시장 동요]화약고中東 또 긴장…유가상승 부채질

  • 입력 2000년 9월 16일 18시 46분


극도의 혼란 상태를 보이고 있는 국제 석유시장에 ‘걸프지역의 군사적 긴장’이라는 돌발 변수마저 등장해 석유수입국들이 불안에 떨고 있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하루 80만배럴 증산 합의 발표 뒤에도 혼조세를 거듭해 온 국제 유가는 이라크가 쿠웨이트의 ‘석유도둑질’을 비난하면서 ‘주권 수호조치’를 취하겠다고 발표한 데 이어 미국이 군사적 대응을 시사하자 폭등세로 돌아섰다.

15일 서부텍사스중질유(WTI), 브렌트유, 두바이유 등 3대 국제원유 가격은 5%가 넘는 수년 만의 하루 최대 상승폭을 기록하면서 걸프전 발발(90년10월) 이후 최고치로 치솟았다.

아메르 라시드 이라크석유장관은 14일 “쿠웨이트가 양국 국경에 인접한 유전 두 곳에서 석유를 훔쳐가고 있어 적극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이라크 항공기들이 쿠웨이트와 사우디아라비아 영공 근처까지 접근하는 일이 발생했다.

잠잠하던 이라크가 왜 갑자기 쿠웨이트에 ‘시비’를 걸고 나섰을까. 전문가들은 고유가 행진이 지속되면서 중동 지역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자 이라크가 내친 김에 미국의 경제제재에 대한 강한 불만을 표출하려는 것으로 분석한다. 걸프지역의 긴장이 유가에 엄청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현 시점을 이라크로서는 문제 제기의 결정적 시기라고 판단했다는 것.

일부에선 이라크의 위협이 10년전 걸프전 당시의 상황과 매우 흡사하다며 심상치 않게 여긴다. 쿠웨이트가 먼저 국경을 침범해 ‘자위’ 차원에서 무력 대응했다는 이라크측의 주장이 10년전과 똑같다는 것.

이라크의 도발적인 태도는 파괴력이 엄청난 사안으로 가뜩이나 불안한 국제 석유시장에 엄청난 파장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 조그만 군사적 충돌이라도 발생할 경우 국제 석유시장은 걷잡을 수 없는 ‘공황 상태’로 빠져들 가능성이 높다. 걸프전 때와 같이 미국의 군사적 개입과 걸프만 봉쇄로 이어질 것이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

이라크가 당장 군사적 행동을 취하지 않더라도 석유시장이 요동칠 가능성은 높다. 하루 300만배럴의 원유를 생산중인 이라크가 원유수출 중단 카드를 꺼낼 경우 석유시장은 ‘대혼란’에 휩싸일 전망이다. 300만배럴(유조선 50∼60척 분량)을 대신 공급할 수 있는 국가는 사우디아라비아뿐인데 이 마저 쉽지 않다. 전세계에 석유를 실어 나르는 유조선이 거의 풀가동 상태에 있기 때문. 석유중개상들은 “당분간 유가의 상승세가 불가피하다”고 관측한다. 이들은 15일 빌 클린턴 대통령이 “미 경제가 침체에 빠질 위험이 없으며 유가 폭등을 잘 견디고 있다”고 말한 것을 전략비축유(SPR)를 당장 방출할 의사가 없는 것으로 해석했다.

<이종훈기자>taylor5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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