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베리아를 달린다]'타이가'에 숨쉬는 동양의 정서

  • 입력 2000년 9월 15일 18시 57분


《시베리아는 러시아 땅의 절반을 차지하면서도 인구는 겨우 17%가 모여 사는 오지(奧地). 그러나 석유와 가스 목재 등 엄청난 천연자원으로 러시아 경제를 뒷받침하고 있다. 수출의 4분의 3을 차지하는 석유와 가스는 시베리아산이 70∼80%에 이른다. 러시아뿐만 아니라 외국에서도 시베리아의 경제적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그러나 시베리아는 단순히 ‘자원의 보고(寶庫)’라는 차원을 넘어 문화적으로도 모스크바 등 유럽 러시아와는 전혀 다른 색깔과 체취를 지닌 독특한 사회다.》

시베리아에서 2년째 살고 있는 박상범(朴相範)대우전자 노보시비르스크 법인장은 시베리아의 자연과 사람, 이들의 삶에 흠뻑 빠졌다고 털어놓았다. 박씨는 “모스크비치(모스크바 사람)와 비교해 ‘정말 같은 러시아인일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시베리아 사람들은 다른 점이 많다”고 말했다. 서구인들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 모스크비치에 비해 시베리아 사람들은 순박하면서도 인정 많고 강인한, 아직 발길이 닿지 않는 ‘타이가(시베리아의 울창한 침엽수림)’ 같은 사람들이라는 것. 여름과 겨울의 기온차가 80도 가까이 되는 혹독한 자연환경 때문에 이 지역 사람들은 한결같이 강인하고 생활력이 있다.

▼인정많고 생활력도 강해▼

박씨는 “집에 초대하고 명절에 선물을 주고받기를 즐기는 것을 보면 유럽과 아시아의 사이에 있는 시베리아 사람들이 동양적인 정서가 많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고 말했다. 시베리아식 만두인 ‘펠메니’ 등 입맛도 서양보다는 동양 쪽에 가깝다.

이르쿠츠크대 법학부에서 유학하는 정정길(鄭挺吉)씨는 시베리아에 눌러 앉을 결심으로 아예 집까지 사버렸다. 시베리아는 경제적으로 유럽 러시아에 비해 뒤떨어져 있지만 사람들은 낙천적이고 사냥과 낚시 등 자연을 즐기며 여유 있게 살아간다.

▼사냥-낚시 즐기며 삶에 여유▼

취재팀은 바이칼호 근교의 통나무집에서 하룻밤을 묵으면서 이곳 사람들의 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바냐(러시아식 사우나)를 체험했다. 바냐는 강가의 통나무집에 벽돌로 화로를 만든 것이 전부. 장작불을 지펴 열이 오르면 몸에 물을 끼얹으면서 사우나를 즐긴다. 러시아 사람들은 자작나무 줄기를 물에 적셔 아플 정도로 세게 온 몸을 때리는데 이것이 혈액순환에 좋다고 한다. 사우나를 하다가 강으로 달려가 물에 몸을 담그고 다시 사우나를 하는 것을 반복한다. 겨울에는 얼음을 깨고 강에 뛰어들거나 눈 속을 뒹굴기도 한다. 시베리아의 웬만한 집들은 ‘다차’(교외의 텃밭이 딸린 별장) 옆에 조그마한 바냐 하나씩은 갖고 있다.

16세기부터 러시아는 우랄산맥을 넘어 시베리아로 진출하기 시작했다. 카자흐 기병대의 뒤를 따라 온 러시아인들은 삼림을 개간해 마을을 만들고 슬라브정교회를 세웠다. 그러나 바이칼호와 타이가 등 인간의 힘을 압도하는 자연 속에 살면서 사람들은 자연을 숭배의 대상으로 삼게 됐다. 시베리아는 ‘전 세계 샤머니즘의 본산’이라고 할 정도로 미신과 무당이 많다. 정교도인 러시아인들이 시베리아에서도 다수를 차지하지만 불교와 이슬람교 라마교 등 다양한 종교와 문화가 공존하는 것도 시베리아의 특징이다.

▼正敎외 다양한 종교 공존▼

노보시비르스크대의 황 타티아나 박사(경제수학)는 “삼엄했던 소련시절에도 시베리아는 지리적으로 중앙과 떨어져 있어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학문연구가 가능했다”고 말했다. 시베리아에는 이러한 분위기가 여전히 남아 학문세계에도 자유롭고 독자적인 학풍이 유지되고 있다.

<이르쿠츠크·노보시비르스크〓김기현특파원>kimki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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