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베리아를 달린다]뱌트스코예 '김일성부대'막사 폐허

  • 입력 2000년 9월 7일 18시 41분


하바로프스크에서 남서쪽으로 70㎞ 떨어진 뱌트스코예 마을. 아무르강변의 원시림 속에 묻힌 이 작은 마을이 한국현대사의 중요한 현장이다. 1940년대 흔히 ‘김일성부대’로 불리던 88특별저격여단이 바로 이 마을에 주둔했다. 정확히 말하면 김일성부대는 중국인 러시아인 한인 등으로 구성된 88여단의 대대격인 제1교도영. 김일성은 제1교도영장으로 300여명의 한인부대를 지휘했다.

차에서 내려 달려드는 모기와 하루살이 떼를 쫓아가며 숲길을 따라 마을로 들어서자 농가 사이에 통나무로 지은 카페와 레스토랑 방갈로가 나타났다. 한편에는 철창 안에 곰이 묶여 있고 고급 승용차 몇 대가 서 있었다.

이 마을에서 태어나 평생을 산 아나톨리 코르베코프(70)는 “마을이 몇 년 전부터 하바로프스크 등 도회지 부자들이 주말이나 휴가를 보내는 별장촌과 유원지로 변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몇몇 촌로의 안내로 60여년 전 부대 주둔지로 갔다. 막사로 쓰던 통나무집 몇 채가 폐허로 남아 있었다. 만저우에서 항일운동을 하던 김일성부대는 일본군의 추격이 심해지자 1940년말 국경을 넘어 소련으로 왔다.

김일성부대는 소련군의 지원을 받으며 이곳에 훈련기지를 세우고 국내진공을 준비하다가 광복을 맞자 소련군과 함께 북한으로 돌아갔다. 마을사람들은 “어느 날 갑자기 농가 몇 채가 강제 수용됐고 부대가 주둔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마을사람들은 이 부대를 ‘중국인 부대’라고 불렀다며 부대 접근이 금지됐다고 말했다.

1945년 전쟁이 끝나자 부대는 소리 없이 사라졌고 막사 등은 폐허가 됐다. 길이가 20m 가량 되는 가장 큰 막사는 그 후 한때 고아원으로 쓰였다고 한다.

북한의 김정일국방위원장은 공식적으로는 백두산 밀영에서 태어난 것으로 돼있으나 일부 러시아 학자들은 이곳이 출생지라고 주장한다. 어쨌든 김국방위원장이 이곳에서 세살 무렵까지 살았던 것은 확실하다.

코르베코프 할아버지는 10여년 전 북한의 고위인사를 태운 헬기가 근처에 내린 적이 있다고 말했다. 김책, 최용건 등 훗날 북한정권을 탄생시킨 쟁쟁한 인물들이 모두 88여단 출신이기 때문에 이곳은 북한정권의 산실이기도 하다. 그들 중 누군가가 러시아 방문길에 옛 생각이 나서 들렀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바로프스크〓김기현특파원>kimki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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