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턴 NMD연기 발표]밖은 달랬지만 안엔 '새 불씨'

  • 입력 2000년 9월 3일 19시 02분


국가미사일방어체제(NMD)구축 문제가 미국 대선 정국의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1일 이 문제를 11월 대선에서 선출될 차기대통령에게 넘기기로 결정한 것을 국제사회는 반기고 있으나 미국 내에선 공화당이 이를 강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그 동안 미국의 NMD구축에 반대해 온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클린턴 대통령의 결정은 사려 깊고 책임 있는 조치로 전 세계의 전략적 안정과 안보를 강화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환영했다.

중국은 주방짜오(朱邦造)외교부 대변인을 통해 이번 결정을 “이성적”이라고 평가하고 “미국이 이에 대해 다른 국가들과 더 많은 대화와 논의를 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유럽 국가들도 미국의 조치를 “신중한 결정”이라고 옹호했다.

그러나 미 공화당의 조지 W 부시 대통령 후보는 “클린턴 대통령과 앨 고어 부통령은 처음엔 미사일 방어체제의 필요성을 부인하더니 이제는 결정을 지연하고 있다”며 “클린턴 행정부는 미국의 50개 주와 우방을 미사일 공격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방어체제 개발의 기회를 놓쳤다”고 비난했다.

그는 지난달 전당대회 등을 통해 “당선되면 NMD를 가능한 한 빨리 배치하겠다”고 공약하고 현재 지상에서의 요격 미사일 발사만 상정하고 있는 NMD의 구상을 공중과 해상에서의 요격 미사일 발사를 포함하도록 확대하겠다는 뜻을 밝혀 왔다.

클린턴 행정부의 유일한 공화당 각료인 윌리엄 코언 국방부 장관은 클린턴 대통령의 결정을 지지하면서도 “미국이 당면한 위협을 고려할 때 기술적 타당성이 입증되는 대로 효율적인 NMD를 배치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부통령으로서 클린턴 대통령과 NMD문제를 계속 협의해온 민주당의 고어 대통령 후보는 NMD가 실제로 작동할 수 있도록 좀 더 기술적 타당성을 검토할 기회가 주어진 것을 환영한다는 입장이다. 그는 NMD에 관해 지금까지 “대통령의 결정을 존중하겠다”며 자신의 견해를 적극적으로 밝히지 않았으나 앞으로 공화당의 공격에 맞서 논쟁이 불가피할 것으로 미 언론은 보고 있다.

뉴욕 타임스지는 3일자에서 “NMD배치를 연기한 데는 러시아의 반발이 큰 고려사항이 됐으며 남북정상회담으로 정점을 이룬 북한의 외교적 개방도 NMD의 구실이 된 불량배 국가들의 위협이 과장됐다는 비판론자들의 주장에 힘을 실어줬다”고 보도했다.

NMD계획은 미국 본토를 겨냥한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조기에 탐지할 레이더 기지를 한국과 일본에 설치하도록 하는 등 북한을 자극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미국의 이번 조치는 화해 협력을 적극 모색하는 남북관계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 능력을 보유할 것으로 보이는 2005년까지 NMD를 배치할 예정이었으나 앞으로 차기 정권이 배치를 결정한다고 하더라도 실전 배치시기는 1, 2년 정도 늦춰질 전망이다.

▼클린턴이 조지타운大로 간 까닭은?▼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국가미사일방어체제(NMD)구축 연기에 관한 ‘중대 발표’를 왜 백악관이 아닌 워싱턴의 조지 타운대에서 했을까.

1일 클린턴 대통령이 고풍스러운 대학 강당에서 800 여명의 학생과 교수들을 상대로 첨예한 외교안보 현안인 NMD 연기 입장을 밝힌 것을 언론을 통해 지켜본 많은 사람이 품는 의문이다.

뉴욕 타임스지는 2일 클린턴 대통령의 측근들을 인용, “클린턴 대통령이 자신의 결정에 대한 이유를 밝혀야 하는 사려 깊은 연설을 하는 장소로는 백악관 브리핑 룸보다 대학교가 낫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클린턴 대통령은 이와 함께 백악관에서 NMD 연기를 발표할 경우 언론에 미리 알려질 것을 우려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클린턴 대통령은 조지 타운대 졸업생. 68년 이 대학을 졸업한 그는 대통령으로서 그동안 12번이나 이곳을 방문, 후천성면역결핍증(AIDS)위기 사회보장개혁 청소년범죄 등에 대한 견해를 밝혔을 만큼 모교 사랑이 두텁다.

그는 이날도 자신이 35년 전 학생대표로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을 책임졌던 사실을 회고하고 “올해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이 잘 시작되도록 돕기 위해 이곳에 왔다”고 말해 동문들로부터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워싱턴〓한기흥특파원>eligi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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