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법원, 下馬碑파손 차주 손배소 처리 고심

  • 입력 2000년 7월 13일 18시 54분


법규만으로는 처벌이 곤란한 불상사 하나 때문에 중국의 ‘법치주의’가 고민에 빠져있다.

1월말, 벤츠 한대가 랴오닝(遼寧)성 선양(瀋陽)시 고궁 입구에 있는 ‘하마비(下馬碑)’를 들이받았다. ‘푸만러우(福滿樓)’라는 음식점이 야간당직 및 부식구입용으로 사용하는 차였다.

선양은 청나라 최초의 도읍지. 누르하치 등 청나라 초기 황제들이 이 고궁에 살았다. 청의 건륭제 때 만든 이 하마비는 한어와 만저우어, 후이족어, 몽골어, 좡족어 등 5개 언어로 ‘누구든 말에서 내려라’고 쓰여있는 선양의 명물이었다.

차에 받혀 부셔진 하마비는 누군가에 의해 부근 꽃밭 속에 숨겨졌다. 선양 당국은 곧바로 조사에 착수했다. 그러나 처벌이 문제였다. 사고 운전사는 사망했고 사고 차량은 차량파견업체에서 보낸 차였다.

형사처벌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당국은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국가 중요 문물’ 훼손 책임을 물어 차량사용자인 푸만러우측에 2700만위안(약 38억원)의 손해배상소송을 냈다.

중국 동북지역 최대의 민사소송으로 불린 이 재판은 11일 선양중급인민법원에서 시작됐다.

푸만러우측은 강력히 항의했다. 선양 고궁이 국가 1급 문물이긴 하지만 고궁 앞 하마비를 문물로 지정한 바는 없다는 것이다. 국무원이 공표한 중요문물 리스트에 이 하마비는 들어있지 않다.

배상액수 산정방식도 문제. 선양 당국은 하마비의 가치를 평가할 기준이 없자 고민 끝에 명대의 도자기 두 개 값을 쳐 2700만위안으로 값을 매겼다. 푸만러우측은 이 평가방식이 자의적이라고 항의했다.

푸만러우는 또 차량통행을 허용한 선양 고궁측에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평소에는 차량통행이 허용되지 않는 하마비 앞길을 경비원 허가를 받고 들어가 일어난 사고인 만큼 통행을 허락한 고궁측의 책임이 크다는 것이다.

‘법에 따라 다스린다’는 ‘의법치국(依法治國)’은 요즘 중국 최대의 모토다.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발전시키기 위해 미비한 법제도를 빠르게 정비, 인치에서 법치로 이행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상생활에는 아직 법으로 메울 수 없는 ‘빈틈’이 많다는 사실을 중국인들은 선양 하마비 소송을 통해 새삼 깨닫고 있다.

<베이징〓이종환특파원>ljhzi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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