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토 코소보 공습 1년]평화유지軍 4만 주둔

  • 입력 2000년 3월 21일 19시 34분


24일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군이 코소보 내 알바니아계 주민에 대한 유고의 ‘인종청소’를 중단시키려고 대대적으로 유고 공습을 시작한 지 1년이 되는 날. NATO군은 당시 78일간의 공습 끝에 유고연방군을 코소보에서 축출했다. 그러나 아직도 유고연방 곳곳에서는 군사충돌 가능성이 여전하고 알바니아계와 세르비아계 주민간의 갈등도 그치지 않고 있다.

지난해 6월9일 휴전협정에 따라 국제평화유지군(KFOR) 3만7000명이 진주했지만 곳곳에서 벌어지는 이종교 주민간의 유혈충돌을 막는 데는 부족한 상황이다.

코소보 내 세르비아계와 알바니아계 주민의 갈등이 가장 심한 곳은 코소보 북부 코소브스카 미트로비차. 당초 이 곳엔 알바니아계 주민이 다수였으나 코소보 전쟁 후 세르비아계가 다수가 됐다. 심한 피해를 본 알바니아계 주민들이 보복할까 봐 세르비아계 주민들이 이 곳으로 모여들었기 때문.

KFOR는 이바르강을 경계로 북쪽엔 세르비아계, 남쪽엔 알바니아계 주민이 사는 곳으로 구분했다. 알바니아계 주민들은 원래 거주하던 북쪽으로 복귀하겠다면서 세르비아계 주민은 물론 KFOR와도 충돌이 잦다.

‘동부 코소보’로 불리는 세르비아공화국 내 프레셰보 계곡도 새로운 분쟁이 촉발될 수 있는 곳. 이 곳엔 알바니아계 주민 7만명이 살고 있다. 알바니아계 코소보해방군(KLA)의 일부는 ‘UCPMB’라는 게릴라 단체를 결성해 이 지역 알바니아계 주민들을 세르비아의 통치에서 해방시키겠다며 코소보 국경을 넘어 침범하고 있다.

유고연방 내 공화국인 몬테네그로가 지난해 8월 세르비아와 동등한 권리를 주장하고 나라이름에서도 ‘유고’라는 말을 삭제하자는 강령을 채택하는 등 독립 움직임을 보이는 것도 세르비아와의 마찰 요인이다.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유고 대통령은 서방 국가의 전범 기소에도 불구하고 건재해 있다. 그러나 ‘발칸의 인종청소업자’로 알려진 아르칸이 1월15일, 파블레 불라토비치 국방장관이 2월7일 피살된 데 이어 세르비아 민병대 지도자 브라니슬라브 라이노닉이 20일 피살돼 정정불안이 높아지고 있다.

<구자룡기자> bon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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